[프리뷰]'처음 만나는 자유'/60년대 소녀의 꿈

  • 입력 2000년 6월 15일 19시 41분


‘처음 만나는 자유’(Girl, Interrupted)는 여러겹의 빛깔을 마치 프리즘처럼 하나하나 드러내는가 하면 스테인드 글라스처럼 솜씨좋게 겹쳐놓을 줄도 아는 마법사 같은 영화다.

이 영화는 혼돈과 불신의 시대였던 60년대의 시대정신을 나지막이 읊조리는가 하면 세대를 초월한 성장기 통과의례의 아픔을 선연하게 그려내기도 한다. 현대 미국인의 영원한 동화 ‘오즈의 마법사’를 현실속에 중첩시키는가 하면 광기에 대한 제도적 폭력을 신랄하게 꼬집었던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기도 한다.

시대는 월남전 반전시위와 민권운동으로 홍역을 앓던 60년대말. 보스턴 상류층 출신으로 대학진학을 포기한 18세 소녀 수잔나 케이슨(위노나 라이더)은 다량의 수면제를 먹었다가 ‘클레이무어’ 정신요양원에 반강제로 보내진다. 꿈과 현실이 혼동을 일으키고 과거와 현재가 의식속에 뒤섞인다는 이유로 ‘경계인격장애’라는 진단이 떨어진 수잔나는 정상인들과 격리된 상처투성이 소녀들을 만난다. 얼굴에 화상을 입은 폴리, 병적인 거짓말쟁이 조지나, 자기 방속에 숨어 아버지가 해준 닭튀김만 먹는 데이지. 그리고 ‘클레이무어’의 터줏대감으로 탈출과 귀환을 반복하며 그들의 영혼을 휘어잡는 마법사 리사(안젤리나 졸리).

영화는 이 때부터 구심력과 원심력의 대위법으로 진행된다. 케이슨은 ‘클레이무어’로부터 해방되는 자유를 맛보기를 꿈꾸지만 동시에 모순과 허위로 가득찬 바깥세상에 합류할 수도 없다. 시간과 공간의 의식적 통제가 가능한 현실세계에 남을 것인가 자기파괴적이지만 타협을 모르는 순수의 심연속으로 숨을 것인가. 이는 또한 케이슨을 바깥세계에 합류시키려는 따뜻한 간호사 발레리(우피 골드버그)와 현기증나는 비이성의 세계로 인도하는 리사로 형상화한다.

이 영화로 올 아카데미영화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안젤리나 졸리의 연기는 그녀의 도발적 입술만큼 관능적이고 휘발유 냄새 가득한 눈빛만큼 몽롱하다. 만일 이 영화를 여성판 ‘뻐꾸기둥지위로 날아간 새’라고 한다면 잭 니콜슨은 의당 그의 몫일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오즈의 마법사’에 투영해서 본다면 위노나 라이더는 길을 잃고 헤메이는 영혼의 고통을 가장 잘 담아낸 도로시로 기억될 것이다. 서른을 앞둔 나이로 여전히 소녀같은 매력을 잃지않는 그의 ‘영화연령’은 불가사의할만큼 성숙하다.

‘캅랜드’에서 할리우드 대형영화를 기웃거리다 다시 상처받은 영혼의 내면세계로 돌아온 제임스 맨골드감독은 ‘뻐꾸기…’를 감독한 사회주의권 출신의 밀로스 포만과 달리 사회보다는 개인에 초점을 맞췄다. 페트 라르카의 ‘다운타운’과 스키터 데이비스의 ‘디 엔드 오브 더 월드’ 등 60년대 음악은 영화 곳곳에 적절히 스며들었다.

플래쉬 백 장면은 지나치게 멋을 부리다 보니 수잔나의 내면적 방황이 지나치게 추상적으로 흐른 아쉬움이 있다. 93년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던 수잔나 케이슨의 자전적 소설이 뿜어내는 대사의 맛을 음미하기에는 개봉시기가 너무 덥다. 18세이상 관람가. 24일 개봉.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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