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전진우/徐대표의 '괴로움'

  • 입력 2000년 6월 8일 19시 43분


유대인 속담에 ‘한 가지 거짓말은 거짓말이고 두 가지 거짓말도 거짓말이나, 세 가지 거짓말은 정치’란 말이 있다. 또 정치인이 될 수 있는 청년의 자격을 묻는 물음에 “내일, 내주, 내월 그리고 내년에 무엇이 일어날 것인가를 예언할 수 있는 재능이다. 그리고 후일에 그 예언이 맞지 않았던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재능을 소유하고 있는가 없는가에 달려 있다”고 답했다는 윈스턴 처칠의 일화는 종종 소개되는 이야기다.

▷그러나 정치판의 거짓말을 언제까지 으레 있을 수 있는 일 정도로 넘긴단 말인가. 지난 달 모리 요시로(森喜朗)일본총리가 기자들에게 “취침, 기상 시간에 대해서는 거짓말을 해도 되지 않느냐”고 했다가 물의를 빚었다고 한다. 그로서는 조크라고 한 듯 싶으나 총리의 하루 일과를 자세히 싣는 일본 신문의 오랜 전통에 비추어 보면 묵과하기 어려운 ‘망언’인 셈이다.

▷서영훈(徐英勳)민주당대표가 만 하루 동안 고집해 온 ‘거짓말’을 거짓말이었다고 시인하고는 괴로워한다는 보도다. 시민운동가 출신으로 ‘도덕 정치 구현’을 앞장서 얘기하던 서대표로서는 사실 어지간히 민망스럽기도 할 일이다. 서대표의 변명은 자신의 김종필(金鍾泌)자민련명예총재 집 방문 건을 공개하지 않기로 JP측과 약속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인데, 세상에 상대방이 이미 깨 버린 약속을 지키느라 계속 거짓말을 했다니 아무리 정치 초년의 ‘고지식한 어른’이라고 해도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약속을 어긴 쪽이 더 비난받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약속은 약속이고 거짓말은 거짓말이다. 거짓말까지 하기로 약속한 것은 아닐 테니까 말이다. 더구나 약속은 정파간의 문제고 거짓말은 국민을 상대로 한 셈이니 새삼스레 그 무겁고 가벼움을 가릴 여지는 없지 않은가. 정치 개혁도, 도덕 정치도 결국은 신뢰의 문제다. 거짓말을 하며 신뢰를 말할 수는 없다. 아직도 ‘정치판이란 원래 거짓말도 하는 곳 아닌가’하는 낡은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정치인은 새 시대의 정치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다.

전진우<논설위원>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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