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제챙기기와 官治망령

  • 입력 2000년 6월 7일 19시 02분


우리 경제에 국민이 모르는 어떤 비정상적 징후가 감지된 것인가.

현충일 추도사에서 김대중대통령이 “경제를 직접 챙기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7일 경제장관 간담회에서 은행에 대해 기업대출을 확대토록 촉구한 것은 당혹스러운 일이다. 대통령의 말이 4대 개혁의 완결을 위한 의지의 표현이고 경제장관 간담회의 발표가 그 과정에서 빚어질 부작용을 예방하는데 목적이 있다 하더라도 그 표현의 시기와 방법에는 문제가 있다.

대통령이 국정을 챙기겠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직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그 의미는 달라진다. 지금까지는 경제각료를 통해 ‘간접적’으로 챙겼더니 일이 잘 안돼 경제가 이 모양이 됐다는 뜻이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임명권자가 왜 그런 경제각료들을 지금까지 수하에 부리고 있었다는 말인가.

말의 꼬투리를 잡자는 것이 아니다. 한 때 제2 위기설까지 나돌던 상황에서 벗어나 모처럼 현대그룹사태가 안정되어 주가가 상승하고 경상수지가 다시 흑자로 돌아선 때에 나온 대통령의 발언은 진의가 무엇인지 헤아리기가 정말 어렵다.

만의 하나, 혹 ‘파퓰러리즘(인기주의)’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당장은 시장에 약효가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악영향을 줄 것이 분명하다. 시장이 민감한 반응을 보일 때마다 대통령이 직접 대안을 제시할 수는 없지 않은가. 경제장관들에게 무게를 실어 줘 시장에서 영(令)이 서도록 해야 할 시점에서 이들을 더욱 왜소하게 함으로써 이제는 대통령이 경제주체들을 직접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은 아닐까.

기업대출을 확대하라는 경제장관 간담회의 촉구도 그렇다. 은행의 대출이 기업이나 개인의 신용상태와 미래가치 평가를 바탕으로 자율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해 온 것은 정부였다. 환란의 주원인 중 하나가 은행으로 하여금 부실기업에 대출토록 정치권이 작용을 한 것이었다는 쓰라린 경험 때문이다.

그런 정부가 다시 은행대출에 개입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얘기를 공개적으로 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경제개혁 과정에서 일정 부분 정부의 개입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지금은 은행이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대출해 줄 수 있도록 거시적 차원에서 여건을 숙성시켜 주는 것이 바람직한 정부의 역할이다. 정부가 시장상황에 대증요법식으로 반응해서는 곤란하다.

당면 현안인 국민의 경제불안심리를 해소하려면 정부가 경제운용에서 시장의 원칙을 지키려는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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