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워크아웃기업의 도덕적 해이

  • 입력 2000년 6월 5일 19시 25분


동아건설이 총선 때 여야 정치인들에게 선거자금을 뿌린 것은 워크아웃 기업의 전형적인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보여준 사건이다. 이 회사는 오너 경영인의 방만하고 부패한 경영으로 자금난에 빠져 채권단의 신규자금 지원, 채무상환 유예, 대출금 출자전환 등으로 겨우 부도 위기를 모면한 기업이다. 은행 등 채권단과 국민에게 엄청난 부담을 지우며 워크아웃에 들어간 기업은 자산매각, 인력감축 등 비용절감, 경영혁신과 같은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협약 기간 내에 회사를 정상화시키고 부채를 갚아야 한다.

이런 의무를 지닌 기업이 정치판에 광범위하게 돈을 뿌린 것은 마치 수혈을 받고 있는 환자가 헌혈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의 난센스다.

워크아웃 기업에서 어떻게 비자금을 조성해 선거판에 광범위하게 뿌릴 수 있었는지 의문이다. 워크아웃 기업은 모든 지출 명세에 관해 일계표(日計表)를 작성해 은행 등 채권단에서 파견한 경영관리단의 결재를 매일 받아야 한푼이라도 집행할 수 있다. 정치인들에게 준 돈이 계열사 매각과정에서 조성한 리베이트라면 범죄행위에 해당한다. 임원 기밀비라고 하더라도 경영관리단이 지출 전표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모르고 넘어갈 수는 없다. 검찰 수사를 통해서라도 이 부분에 대한 의문을 규명하고 감독기관의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고병우 동아건설회장은 경제부처 관료, 기업체 사장을 거쳐 건설부장관까지 지낸 대표적인 전문경영인이다. 현대그룹 사태 이후 재벌그룹의 황제경영이 도마에 오르면서 오너는 대주주로 남고 경영을 전문경영인에게 맡겨야 한다는 재벌개혁론이 화두가 되는 시점에서 이 같은 사건이 불거진 것은 불행이 아닐 수 없다.

기업주들이 유형무형으로 신세진 의원들에게 선거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관행이라거나 ‘정상적인 후원금’이라는 변명은 통할 수 없다. 정상적인 기업에서도 회사돈으로 정치인들에게 후원금을 주는 것은 주주에 대한 배임 행위에 해당될 수 있다. 하물며 빌려온 돈도 제대로 못갚은 워크아웃 기업의 회장들이 대학에 20억원을 내겠다고 약속하거나 정치권에 마구 돈을 뿌리는 것은 이만저만한 도덕적 해이 현상이 아니다.

이런 유형의 총선자금 지원이 동아건설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오죽하면 대기업 총수들이 선거철만 되면 외국으로 ‘도피성’ 출장을 나가겠는가. 기업주들이 회사돈으로 정치인들에게 선거자금을 주는 관행을 뿌리뽑는 정치개혁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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