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선의 뮤직@메일]패티김과 S.E.S, 핑클…

  • 입력 2000년 5월 23일 19시 29분


주말마다 TV명화극장이 한 주간의 피로를 푸는 유일한 낙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대부분을 차지한 헐리우드 영화에는 착하고 예쁜 백인여자와, 어려운 일들을 척척 해결할 줄 아는 지혜로운 백인 남자가 늘 나왔다. 6.25를 겪은 후의 국민 모두에게 각인되어 있던 유엔군의 이미지에 보안관 이미지가 더해졌다.

그들은 모든 면에서 훌륭한 인종 같고 우리는 그렇지 못한 것 같았다. 이러한 부질없는 거짓 이데올로기를 벗어나는 데 전 국민이 오랜 기간 형량할 수 없이 많은 정신적 물질적 비용을 치렀다.

패티김은 당시 유명했던 패티 페이지의 이름에서 패티라는 예명을 가져왔다고 한다. 미군클럽이 우리 가수들의 등용문이었던 비참한 시절의 일이다.

요즘의 젊은이들은 전후세대도 아니고 서부영화를 보고 자란 세대도 아니다. 그런데 패티김이 화려하게 활동하던 시대보다 영어식 가수 이름이 더 유행인 듯 하다.

‘S.E.S’‘핑클’‘쥴리엣’‘샤크라’‘베이비 복스’‘H.O.T.’ ‘터보’ ‘듀크’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영문이름이 많다. 특정 이미지를 표현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영어식 음에 대한 이미지적 차용을 하겠다는 자세다.

이들은 자유로운 표현의 일환으로 노래 가사 중에 영어로 부르는 소절을 거부감 없이 삽입하기도 한다. 영어가 거룩한 객체가 아니라 쓰고 누릴 수 있는 단순 소재요, 소비재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이름들을 선호하는 요즘 세대는 윗 세대가 역사적인 필연으로 짊어져야 했던, 미국인과 영어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지 않다.

패티김과 ‘S.E.S’는 둘 다 영문 이름이지만 문화적으로는 정 반대의 기호로 읽힌다. 이런 흐름은 기업이 회사 이름을 영어 이니시얼로 표기하고 널리 알리고자 하는 시대적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박해선(KBS2 PD·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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