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환교수의 법과 영화사이]무죄추정

  • 입력 2000년 5월 17일 14시 04분


무죄추정(Presumed Innocent·1990)

감독: Alan Pakula

출연: Harrison Ford(Rusty) Greta Scacchi (Carolyn)

TM캇 터로우(Scott Turow)는 또 다른 법률소설가이다. 문자 그대로 '로 스쿨 1년생'(One L) 이란 소설로 필명을 쌓은 바 있다. 이 작품은 많은 우수한 미국의 대학졸업생이 진학하는 법과대학원 신입생의 실태를 그린 소설이다. 보다 앞서 나온 존 오스본(John Osborn)의 '하버드대학 공부벌레들'(Paper Chasers)과 함께 장차 로스쿨에 진학할 대학생들이 즐겨읽는 소설이다. 터로우의 베스트 셀러 작품 <무죄추정>(Presumed Innocent)은 로스쿨 학생의 ABC인 형사사법의 대원칙을 졸업생으로 현장에서 직면하는 갈등의 한 측면을 조명한 작품이다. <펠리칸 브리프>(Pelican Brief, 1993)의 감독의 같은 제목의 영화는 원작의 줄거리와 메시지를 비교적 충실하게 반영한 작품이다.

모든 형사사건의 피고인은 유죄가 확정되기 이전에는 무죄의 추정을 받는다. 현대법의 기본적 윈리다. 국가가 당사자인 형사사건에서는 국가가 피고인인 개인의 유죄를 입증해 내어야만 한다. 국가권력과 개인 사이의 기본적 관계를 상징하는 법원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현대법의 대원칙과는 정반대로 수사기관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일반적 통념은 죄 없는 사람은 경찰서 근처에 오지 않는다는 유죄추정의 원칙이다.

무죄추정의 원칙의 어두운 측면은 실제로 죄를 저지른 사람이 이 원칙 때문에 죄 값을 치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원칙이 가장 강하게 적용되는 미국의 형사사건에서는 더욱 더 그러하다. 열 두 사람이 만장일치를 이루어야 하는 배심의 평결과 피고인의 절차적 권리를 극도로 보장하는 제도 때문에 생기는 부산물이기도 하다.

<무죄추정>은 전형적인 탐정소설이자 미스테리 영화이다. 그러나 단순한 미스테리극으로 넘길 수 없는 심각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배심이 주도하는 미국의 형사사법 체계 내에서 검사라는 보조적인 지위에 있는 사법기관의 특성을 교묘하게 그린 작품으로 읽을 수 있다.

영화의 시작과 끝 장면의 화자의 독백이 배심을 보조하는 검사의 인간적, 직업적 한계를 간접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영화가 시작하면서 텅 빈 법정, 열 두 개의 빈 의자가 여러 각도에서 비친다. 배심원석이다. 화자의 독백이 카메라의 각도를 따라 돈다.

"나는 검사다. 사람을 판단하고 증거를 수집하여 기소한다. 배심이 숙고 끝에 무엇이 일어났는지 사실을 밝힌다. 배심이 못 해내면 정의의 희망은 흔들린다."(원작은 배심에 대해 종속적인 검사의 입장을 보다 분명하게 제시한다. "나는 범죄의 증거를 제시한다. 당신들은 이들 증거를 검토하여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하기에 충분한지 아닌지를 결정할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도 카메라는 배심석에서 출발하여 방청석 판사석 그리고 마지막으로 법정의 전경을 비친다. 나레이터의 독백이 함께 돈다.

"나는 검사다.… 같은 범죄로 두 사람을 벌할 수가 없다.… 범죄와 피해자는 있으나 처벌은 없다."

보다 유능한 감독이었다면 "나는 검사다. 나는 또다시 어둠의 늪에서 일상을 계속한다. 배심이 사실을 가려줄 것을 기대하며. 그리고 그 책임을 그들에게 돌리며."라고 덧붙였을 것이다.

이 영화는 시종일관 긴장된 재미를 강요한다. 미녀의 시신, 무고한 피고인, 사소한 증거에서 엄청난 추론을 연결시키는 수사수법, 의외의 진범 등등 여러 가지 관점에서 미스테리 영화의 요소를 구비했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영화도 전반부가 등장인물의 성격, 동기, 의혹의 바탕을 깔아주고 후반부가 이를 풀어간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진실에 접근한다. 재색을 겸비한 미모의 검찰차장 캐롤린 플리머스의 나체 시신이 발견된다. 손을 뒤로 묶인 체로 강간당했고 머리통을 흉기로 강타 당한 흔적이 있다. 모든 단서가 수사관들의 지극히 '논리적인' 접근을 통해 '잘못' 해석된다. 원작의 독자나 영화의 시청자도 마찬가지 오류의 늪으로 인도된다.

초동수사 끝에 경찰이 세운 최초의 가설은 캐롤린이 기소했던 강간범 하나가 앙심을 품고 저지른 보복범죄라는 것이다. 팔을 뒤로 묶고, 가랑이 사이에 몸체를 박아 체중으로 압사시키는 범행의 수법을 보면 범인은 피해자를 "박아 죽일 의도"(fuck her to death)였음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정황도 있다. 피해자의 아파트에 강제로 침입한 흔적도 결박당하기 전에 저항한 흔적도 없다. 무엇보다도 피해자의 질 속에서 발견된 정자가 "뜬 물" (blank), 수사용어로 무정자( non-viable)였던 것이다.

범인은 혈액형 A형에다 생식능력이 없는 남성으로 판명된 것이다. 이어서 경찰의 검시의가 피살자의 질 속에서 "다이어프레임과 함께 피임용 젤리"를 발견했다는 보고서가 제출하자 플롯은 더욱 복잡해진다. 이제 범인은 강간자가 아니라 피살자의 연인이라는 새로운 가설이 세워진다.

"한 잔 마시고 난 후 섹스를 한다. 무언가에 화가 난 이 작자가 물체를 집어들어 여자를 때린다. 죽음을 확인하고 난 후에 결박하고 다이어프레임을 뺀다." 이것이 제 2차 가설이다. 이러한 가설 끝에 사건의 수사를 맡게 된 러스티 새비치가 혐의자로 체포된다. 러스티는 한 때 피살자의 연인이었다. 캐롤린이 러스티의 상관을 새로운 섹스 파트너로 택하면서 그를 차 버릴 때까지 둘은 사무실에서도 섹스를 할 정도로 열렬한 사이였다.

소설과 영화의 후반부에 해당하는 러스티의 재판과정은 살인 재판의 전형적인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사실감과 박진감을 더해준다. 배심원 선정과정, 판사실에서의 당사자의 회의, 법정 변론의 공방, 증거법에 대한 판사의 결정, 변호인들에 대한 판사의 경고, 배심에 대한 판사의 설시(說示, jury instruction)등 형사소송법 교과서에 충실하다.

모든 상황이 러스티에게 불리하게 돌아간다. 연인에게 버림받은 사내의 분노가 우발적인 복수라는 가설이 캐롤린이 살해당하던 날 밤에도 러스티가 전화를 했다는 기록에 적용된다.

"그저 그녀의 목소리를 한 번 듣고 싶었다. 그녀가 받자 아무 말 없이 끊었다. "1970년대 통기타 가수 이장희의 "그건 너"를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잠시라도 사랑의 몽환을 앓아본 마음 약한 사내들에게 공통된 속성일지 모른다. 그러나 살인혐의자에게는 결코 당당한 변명이 아니다.

러스티의 기소와 더불어 형사 전문변호사 샌디의 눈부신 역할이 시작된다. 샌디는 유능한 검사 러스티가 법정에서 상대했던 변호사들 중에 가장 힘든 상대였다. 캐롤린이 수년 전에 난관을 묶는 수술을 (ligation)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검시의의 보고서의 신빙성이 흔들린다. 검시의가 고의 또는 과실로 다른 시체에서 채취한 정액과 혼동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판사는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사건을 각하한다. 당초 기소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다.

무죄추정을 받았던 사람이 무죄가 확정됨으로써 소설도 영화도 종결되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베니스의 상인에서 4막 포셔의 재판이 끝남과 동시에 극 자체가 종결된 것으로 착각하게 하듯이. 그러나 베니스의 상인은 5막이 포셔의 법관(法觀)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를 주듯이 이 작품에서도 모든 법적 절차가 종료된 후에 비로소 진범이 밝혀진다. 혐의를 벗은 러스티가 한가로이 정원일을 하던 중 피와 블론드 색 머리카락이 엉켜 붙은 손도끼를 발견한다.

"내가 죽였어요" 진범은 뜻밖에도 러스티의 아내, 바바라로 밝혀진다. 바바라는 정원용 손도끼로 캐롤린의 머리를 쳐죽인 후, 두 손을 뒤로 묶고 지하실 냉장고 속에 보관해 둔 자신의 다이어프레임 속에서 냉동된 죽은 정액을 꺼내 캐롤린의 몸 속에 투여한 것이다.

진상을 안 러스티는 고민하나 어린 자식을 생각해서 묵묵히 핏자국을 씻어내고 침묵을 지킨다. "나는 내 아들을 어미로부터 빼앗을 수가 없었다."

영화도 원작도 엄밀한 법의 관점에서 볼 때 토론의 여지가 많다. 법조와 정치의 유착, "B- 파일", 뇌물수수와 선거를 앞둔 윤리적 문제, 동료수사관에 의한 물증의 은폐 등등. 그러나 아마도 이 작품에 내재한 가장 중요한 숨은 이슈는 법률가의 세계에 팽배한 직업여성에 대한 편견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남자의 세계에 들어와서 성공한 여성 법률가의 비극적 종말이 필연적인 것임을 암시함으로써 남성세계의 완고함을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바깥 세상에서 여성이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의 질(膣)을 담보로 잡히는 것이라는 것, 게다가 여자가 속할 곳은 가정이라는 가부장적 가치관을 강연하는 것이다.

어느 날 낙하산을 타고 검사보에 임명된 후 초고속 승진을 거듭한 끝에 차장 검사 자리에 오른 캐롤린의 비결은 미모다. "바비 인형, 브론드의 물결, 거의 밋밋한 엉덩이(behind), 수밀도 가슴." 함께 나누었던 짜릿했던 날들을 회상하는 러스티도 성적 매력이 애정의 본질 인 것으로 여긴다.

캐롤린은 능력보다는 "자신의 질(膣) 때문에 출세한" (fucked her way to the top) 사이비 법률가인 것이다. 러스티의 섹스는 애정의 표현이었으나, 캐롤린의 섹스는 오로지 출세를 위한 무기였던 것이다. 신문 보도도 이 점을 부각시킨다. "미녀검사 피살", "복잡한 치정관계", "혐의자는 버림받은 정부"가 그녀의 죽음과 수사를 보도하는 기사의 제목이다.

독신 미모의 여인, 콜라 캔 버리듯 수시로 섹스 파트너를 바꾸는 여자, 그녀의 불행한 죽음은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는 세평은 "정치와 법과 같은 바깥 세상은 여성의 몫이 아니다. 따라서 바깥 세상에 몸을 내던진 여성에게는 파멸이 따른다" 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캐롤린은 독신이다. 그 누구도 아들이 있었는지 몰랐다. 원작에서는 늦게나마 캐롤린에게 틴에이져 아들이 있음이 밝혀지지만 영화에서는 아예 삭제되어 가정과 어머니로서는 부적절한 여자라는 이미지를 더욱 강하게 부각시킨다.

캐롤린의 전남편은 그녀를 일러 "창녀"(bitch)였다고 말한다. 원작에서 아들은 러스티에게 "당신도 어머니의 보이 프렌드였어요?"라고 질문한다.

아들의 바램은 어머니와 잠자리를 함께 하지 않은 사내를 하나라도 만나는 것이다. (캐롤린은 외향만 섹시할 뿐만 아니라 죽은 자태도 시간(屍姦)의 충동이 들 정도로 에로틱하다.

실제로 "북일리노이 사내 절반과는 동침했을 것이다"는 수사관과 언론의 가십이 미녀의 죽음에 대한 평가이다.)

돌이 갓 지난 자신을 버리고 떠난 어머니를 찾아 모자관계를 맺으려 전화를 걸때마다 "'바쁘다" "집에 손님이 있다"라는 답을 되풀이 한 생모였다.

"어머니에게는 일이 전부였어요." 아들은 어머니의 성공이 섹스의 대가라는 것을 주장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독자나 청중은 누구나 그 뜻을 알고 있다. 캐롤린을 유명하게 만든 대표적인 사건이 아동학대 사건이었다는 정도에서 그녀도 모성애의 소유자일지 모른다는 희미한 기대를 걸 수 있을까? (영화에서는 러스티에게 접근하여 그의 도움으로 이 사건을 이긴 후에 사무실에서 격렬한 섹스를 벌인다.)

캐롤린을 죽인 바바라는 이상적인 부인이다. 자신도 교수 지망생으로 박사 학위 논문을 쓰고 있다. 그러나 여덟 살 짜리 아들과의 관계는 더 할 수 없이 모범적이다. 게다가 결코 박색이 아니다. 오히려 만만치 않은 미모의 소유자이다. 가슴은 아직도 봉우리가 생생하고, 출산경력이 있지만 허리선도 섬세하다. 잠자리에서도 적극적으로 서비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내조자이다.

원작에서 캐롤린과의 관계에 대해 고백을 들은 후에 남편보다는 상대방 여자를 화냥년(bimbo)이라고 욕한다. 바바라의 유일한 결점은 사람을 죽였다는 것이다. 그 결점은 남편과 자식을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로, 적어도 남편의 입장에서는 용서된다. 범행에 사용된 물건이 정원을 가꾸는 도구라는 점, 그것을 발견하는 것도 지극히 일상적인 가장의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 중이었다는 사실도 그녀의 정당성을 암시하는 도구가 된다.

독자와 관중의 상식 속에 바바라가 혐의자로 떠오르지 않았던 이유는 이 사건이 바깥 세상, 남자의 세상에서 벌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바바라는 오직 안의 세계, 가정의 세계 내에 존재했을 뿐이다. 살해자는 피해자의 연인의 아내, 살인의 동기는 복수와 연적의 제거. 연적은 가정의 평화를 위협하는 외부의 적이다. 한 동안 가정의 평화를 유린한 외부의 적은 정당하게 살해당하고 남은 사람은 행복하게 정상의 상태로 돌아간다. 평화와 정의의 회복이 이루어진다. 전통적인 가부장적 가치관의 발로이다. 바바라가 끝내 수사선상에 떠오르지 않았던 이유는 이야기가 가정이 아니라 복잡한 정치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바깥 세상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원작에서 바바라는 오로지 화자인 러스티의 절제된, 자기 중심적 관점을 통해서 등장할 뿐이다.

이 작품의 마지막 결론은 아내와 정부(情婦)와의 대결에서 언제나 아내가 승리한다는 공식을 선언한다. 원작을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러스티가 바바라에게 주는 말은 "당신을 이해하오. 우리 가족을 위해 그랬으리라는 것을"이다.

이러한 공식은 비슷한 주제를 다룬 영화 <치명적 유혹>(Fatal Attraction, 1997)에서도 거듭 확인할 수 있다. 일급의 탐정영화 <무죄추정>도 '합리적인 의심'을 극복하지 못한다.

현모양처가 무죄추정을 받는 반면, 사회활동을 하는 여성, 특히 미모를 갖춘 직업여성은 유죄의 추정을 받는, 남성 중심적 편견이 미국의 형사사법제도와 할리우드에 깊이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 주는 영화이다. '린다 김' 사건으로 소란한 이 나라에서도 비슷한 추론이 가능할 것이다.

안경환<서울대 법대 교수> ahnkw@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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