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도서반환협상, 왜 늦어지나

  • 입력 2000년 5월 14일 19시 29분


프랑스 테제베(TGV)의 로비의혹이 불거져 나온 이후 문화계에서는 외규장각 도서 반환 문제에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93년 한국을 방문한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이 도서 반환을 약속한 것은 당시 경부고속철 기종 선정을 앞둔 시점에서 TGV 수주에 미칠 영향을 고려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약속 이후 결국 TGV가 고속철도 차량으로 선정되고 도서 반환을 위한 실무 협상이 개최됐으나 아직까지 별 진전이 없는 것은 실망스럽다.

지난 3월초 김대중대통령이 프랑스를 방문한 자리에서도 2개월 이내에 양측이 만나 이 문제를 마무리짓자고 요청했으나 프랑스측은 "빨리 결론을 내리자"는 원칙론만을 내세우는데 그쳤다.

이후 우리측 협상대표인 한상진정신문화연구원장이 프랑스측에 4월 안으로 협상을 재개하자고 요청했으나 공식 답변이 없다가 최근에야 7월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의사를 통보해 왔다는 것이다. 이렇듯 그간의 협상과정을 지켜보면 프랑스측이 과연 약속을 지킬 생각이 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측이 협상에 미온적인 것은 지금까지 외국 문화재를 원 소유국에 돌려준 적이 없었기 때문에 불리한 선례를 남기게 되는 점을 신경쓰는 것 같다.

또 현재 해당 도서를 소장중인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사서들이 반환에 극히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도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1866년 병인양요때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침입해 외규장각 도서 340여권을 가져간 것은 분명 강제적인 약탈행위였다는 점을 프랑스는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외규장각은 조선조의 주요 왕실 행사에 관한 기록을 보관해오던 곳으로 여기에 있던 도서는 우리 역사 연구에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특히 서울대 규장각이 최근 찾아낸 프랑스군 지휘자 로즈제독의 편지에 따르면 프랑스군은 책을 빼앗은 뒤 건물에 불까지 질러 다른 6000여권의 도서와 문서들을 소실시켰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전하고 있다. 이들 도서는 우리가 문화주권 국가로서 반드시 되찾아야 할 '자존심'이 아닐 수 없다.

도서 반환을 위한 협상은 조속히 재개되어야 하며 빠른 시일 내에 마무리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프랑스측의 보다 성의있는 자세와 93년에 한 반환 약속을 준수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측도 당당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상대편 설득에 나서야 할 것이다. 정부뿐만 아니라 학계 등 민간 차원에서도 당시 프랑스군의 행위가 '약탈'이었다는 점을 국제사회에 환기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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