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겉핥기 감사

  • 입력 2000년 5월 14일 19시 29분


감사원의 수사기관 등을 대상으로 한 도청 감청 특별감사결과가 발표되었지만 정작 국가정보원은 아예 손도 대지 않았고 검찰은 피해 간 인상이 짙다. 대신 힘없는 경찰이나 정보통신부의 잘못만이 지적되어 있다. 예나 지금이나 누구라도 감청이라면 곧 국정원을 떠올리게 되어 있다.

그러나 감사원은 '국정원측이 국가 주요기밀 사항의 경우 감사자료 제출 답변을 거부할 수 있다는 국정원법을 근거로 감사에 불응한다'는 이유만으로 감사대상에서 빼버렸다.

국정원을 빼놓고 무슨 감청감사를 했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감사원측은 지난해 도청 감청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국정원도 감사대상에 포함할 듯이 밝힌 바 있다.

이번 감사를 겉핥기라고 볼 수밖에 없는 또다른 이유는 검찰에 대한 지적 사례가 경찰관련 문제를 빼놓고는 단 한건도 없다는 점이다. 진짜 권력기관의 예봉을 피해간 특감이요, 모양새에 치우친 감사라 해도 할말이 없을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9월22일 법무부 행정자치부 정보통신부 장관들과 국정원장 명의로 '불법 감청은 없다. 불법으로 통신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광고를 냈었다.

이번 특감 결과는 그 광고가 거짓임을 입증해줬다. 허가기간을 넘긴 감청, 끼워넣기 감청, 문서 근거도 없는 긴급감청 등이 지적되었다. 정부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불법을 자행한 관련자들에 대해 경중에 따라 형사처벌과 행정적 문책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정부의 신뢰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특감에서 확인된 내용가운데 특히 수사기관이 '전자우편 엿보기'까지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며 통신비밀 침해의 심각성을 우려하고 있다.

또 휴대전화 비밀번호가 통째로 수사기관에 넘어가 언제라도 개인의 사생활이 무제한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태라는 것도 경악할만한 일이다. 이외에도 전화국 요원만 구슬리면 수사기관이 수시로 도청 감청을 할 수 있는 등의 허점, 감청설비를 만들거나 구매하는데 대한 법의 맹점 등도 드러났다.

감사원도 지적한 것처럼 허점투성이의 통신비밀보호법이 16대 국회 개원과 함께 서둘러 개정되어야 한다. 이 법의 개정안은 15대 국회에서 심의되다가 여야의 주장이 엇갈려 폐기된 것이다. 새 개정안은 이번에 감사원 특감으로 드러난 문제점, 감청 기술의 진보에 따른 입법 불비(不備)사항까지를 망라해 다시 철저히 정비해야 한다. 국민의 통신 인권을 확실하게 보호하고, 엿듣기 공포를 근원적으로 제거하는 법률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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