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석한/철강-자동차 對美수출 조절해야

  • 입력 2000년 5월 12일 19시 27분


미국에서는 올해 들어 무역문제가 이례적일 만큼 뜨거운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의 뉴라운드 협상과 중국에 대한 정상적 무역관계(NTR) 지위 부여문제 등 굵직굵직한 이슈들이 제기돼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선거철이기 때문이다. 무역 문제는 얼마든지 세부적인 이슈나 특정 국가와의 통상마찰로 번질 우려가 있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지난해말 WTO 각료회의 당시 힘을 과시한 미 노동계가 대통령이나 의회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에게 무역법을 보다 강화하거나 강력히 집행할 것을 다짐하도록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경제적 국수주의를 제창하는 패트릭 뷰캐넌이 개혁당 대통령 후보로 나서 앨 고어 부통령과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에게도 무역에 대해 보다 보호주의적 입장을 취하도록 분위기를 잡아나갈 가능성이 있다.

미 무역적자가 매달 적자 신기록을 세워나가고 있다. 1월 270억달러로 사상최대였던 적자폭은 2월에는 290억달러로 늘었다. 이 두 달 동안 일본에 대한 무역적자액은 120억달러였고 중국에 대한 무역적자가 그 뒤를 이어 117억달러를 기록했다. 두 달 간 한국에 대한 무역적자는 거의 20억달러에 육박한다. 물론 미국이 경제호황으로 소비가 늘어 수입이 급증한 탓도 있지만 무역적자 문제는 미 무역정책과 무역 상대국을 비판하고 싶은 보호무역주의자나 정치인들에게 쉬운 공격 목표가 되고 있다.

미국의 주요 교역국인 한국에 대한 면밀한 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얼마 전 발표된 미국의 2000년 국가별 무역보고서(NTE)는 한국에 대한 광범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일본과 유럽연합(EU) 다음으로 내용이 많았다. 이 보고서에서는 한국이 실질적으로 경제회복을 이뤄냈기 때문에 더 이상 신속히 개혁을 이행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미국의 시각이 드러났다. 아직은 이 같은 시각이 정치적인 발언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국의 개혁속도가 느린 데 대한 클린턴 행정부의 참을성이 점차 고갈돼 가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

한국은 이처럼 민감한 시기에 미 정치인이나 정책입안자들에게 불필요한 오해를 주거나 지나친 비난을 뒤집어쓰지 않는 방법을 주의 깊게 강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지금까지 단행된 구조적 개혁 및 무역관련 개혁에서 이룬 성과와 노력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규제나 업계 관행에서 변화를 가져오려는 노력뿐만 아니라 특정한 미제 상품이나 서비스의 수입이 급증한 통계도 지속적으로 공개하고 전달해야 한다.

한국은 NTE가 지적한 가장 심각한 문제들을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미 무역대표부 관리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한국은 미 정치인들이나 정책결정 단계에서 이해집단들로부터 비판의 예봉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미국에 대한 수출현황을 점검하면서 특히 역사적으로 민감한 부문인 철강과 자동차의 수출이 급증하지 않도록 조절할 필요가 있다. 대미 수출 급증은 바로 미 국내에서 정치적 압력을 촉발시키고 한국제품으로 피해를 본 이해집단의 불만에 대해 정치인들이나 정책입안자들이 반응을 보여야 하는 상황을 유발할 수 있다.

물론 앞으로 수개월간 선거를 앞두고 무역문제에 대한 정치인들의 언사가 강경해진다고 해서 한국이 위축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수입이 급증하고 미 경제가 불경기로 갈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는 상황에서는 정부의 단기적 정책이 선거 이슈에 영향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은 NTE에 언급된 사항들을 재빨리 해결하고 특정품목의 대미 수출급증을 피하며 미국의 무역관련 관리들을 납득시킴으로써 이 같은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

김석한<미 애킨 검프 법률회사 수석변호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