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민병욱/정당 병정

  • 입력 2000년 5월 2일 19시 50분


정치학자 오스틴 래니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국회의원의 의정생활 유형을 두 가지로 분류했다. 하나는 이른바 ‘정당 병정(party soldier)’. 이들은 당의 엄격한 규율에 얽매여 특수 상황을 제외하고는 정당지도자들이 지시한대로 국회에서 투표하도록 압력을 받는다. 대체로 영국의 하원의원들이 이에 속한다. 두번째 유형은 ‘독립 활동가’. 정당의 규율이 느슨하기 때문에 이들은 지도자의 주문을 곧이곧대로 따라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미국의 상 하원의원들이 이런 유형이다.

▷영국의원들이 ‘정당 병정’이란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얻은 이유는 간단하다. 내각책임제하의 대부분 의원은 ‘장관직을 갖지 못한 평의원’이다. 그들의 꿈은 지도자에 의해 장관직에 지명되는 것이다. 지도부가 결정한 당론을 소신과 다르다고 반대하면 장관직에 오르기는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다. 오히려 소신을 접고 당론을 좇아 찬성연설을 멋들어지게 하면 입각의 길이 열리고 동료의 찬사와 언론의 주목도 받는 ‘신예’로 등장한다. 무엇 때문에 가시밭길을 일부러 골라 가겠는가.

▷미국의원들이 ‘독립 활동가’ 호칭을 듣는 이유도 자명하다. 그들은 지역구에서 직접 예비선거에 참여하는 사람들에 의해 공천을 받지, 중앙당 지도부의 지명을 받는 게 아니다. 정치적 성패가 전적으로 지역구민에 달려 있기 때문에 ‘지도자의 명령을 과감히 거부하는 것이’ 수천 수만의 표를 얻는 효과를 내기도 한다. 물론 당론에 언제나 반대하기보다 동조하는 일이 많지만 투표결정은 독립적으로 한다. 정당도 소속의원에게 강압적인 표결지시를 내리는 일이 드물다.

▷16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여야 내부에서 자유투표제(크로스보팅 · cross voting)를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당론은 최소화하고 대부분의 사안을 의원의 소신에 맡기라는 주장이다. 분명한 것은 ‘정당 병정’이 주된 영국 국회건, 독립 활동가가 대부분인 미국 국회건 국회는 물론 정당의 민주적 운영 자체가 의심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아직 당내 민주화가 안 돼 있다. 1인 보스정치가 여전하다. 새로운 목소리들은 지금 보스정치 타파의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민병욱<논설위원>min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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