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속으로]여성작가의 감수성

  • 입력 2000년 4월 21일 21시 18분


문학은 과연 죽었는가? 일본의 저명한 문학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은 ‘그렇다’ 라고 말한다. 금년 9월, 대산 문화재단이 주최하는 국제 문학포럼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에 오는 그는 ‘내 생각에 문학은 이미 죽었다. 그런데도 마치 그렇지 않은 것처럼 문학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양심에 어긋나는 짓이다’ 라고 말한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고 반발할 것이다. 문학은 지고하고 영원한 거라고, 그래서 죽기는커녕 오히려 번성하고 있다고, 예컨대 총 판매 부수가 1000만 부를 넘어선 이문열을 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은 문학지들을 읽으면서 혹시 문학이 이미 죽은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갖게 된다. 문학이 영화나 만화보다도 재미와 감동이 없고 유익하지 못할 때, 다 읽고 나서도 작품에 대해 비평가가 별로 할말이 없을 때, 그리고 도대체 왜 그런 것을 썼는지 독자들이 의아해 할 때, 문학은 이미 죽은 것이기 때문이다. 간혹 재미있게 읽히는 작품이 발견되면 십중팔구 작품의 질이 떨어지고, 작품성이 좀 괜찮다 싶으면 대개는 재미와 감동이 없다. 그렇다면 지식과 재미, 그리고 불멸의 예술과 상상력의 근원으로서의 문학은 이미 죽었는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문학이 예술과 문화의 정점에서 지식과 재미를 독점하며 특권을 누리던 시대는 이제 끝났다는 것이다. 이제 문학은 수많은 다른 문화매체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경쟁하고 살아남아야만 하게끔 되었다. 문학은 또한 급변하는 독자들의 감수성과 취향에도 부응해야만 한다. 그런데도 오직 작가들만이 시대의 요구를 외면하고 변화를 거부한다면, 문학의 죽음은 필연적이다.

왜 우리의 여성작가들은 언제나 상처받은 사랑 이야기나, 어린 시절의 추억이나, 뒤틀린 가족관계의 이야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남녀문제와 결혼과 가정이 모든 인간 관계와 인간 존재, 그리고 인간 고독과 인간 고뇌의 기본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리고 그들이 창조한 여성 주인공들이 보이지 않는 제도적 폭력과 사회적 억압 구조를 잘 드러내주고 있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문학은 인간관계의 갈등에 대한 미시적 성찰이나, 여성에 대한 억압구조의 폭로 이상의 그 무엇이어야만 할 것이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우리 여성작가들의 뛰어난 문장력과 탁월한 감수성이다. 예컨대 전경린의 우수에 찬 분위기의 묘사 (‘바다엔 젖은 가방들이 떠다닌다’) 나 조경란의 속삭이는 듯한 문체 (‘나의 자줏빛 소파’)는 남성작가들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또 하나의 세계로 독자들을 데리고 간다. 그들은 그러한 특유의 분위기와 문체로, 뼛속깊이 스며드는 인간의 존재론적 고독과 고뇌를 설득력 있게 묘사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작품집 ‘내 여자의 열매’ 로 최근 주목받고 있는 한강, 재치 있는 문체와 주제가 돋보이는 하성란, 글쓰기가 곧 형이상학적 아픔이 되는, 어쩌면 그래서 최근에 스타일을 바꾸고 있는 배수아, 문학이 곧 삶의 방황이자 완벽한 고립이 되는 함정임, 그리고 알레고리의 렌즈로 현실을 바라보는 김연경 등은 모두 각기 독특한 방법으로 우리 문학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전초병들이다. 작가는 탁월한 이야기꾼이자 스타일리스트여야만 한다. 우리의 재능 있는 여성 작가들이 그 두 가지를 다 갖추고, 좀 더 폭넓고 좀 더 참신한 주제와 문체를 발굴한다면, 문학은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글쓰기에 대한 처절한 고뇌와 탐색이 없이, 어찌 가라타니 고진에게 ‘문학은 죽지 않았다’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김성곤 서울대 교수 문학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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