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남북대화와 美―中

  • 입력 2000년 4월 20일 19시 55분


남북정상회담 합의에 대해 미국은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우리 외교부나 주한 미대사관 관계자들은 한미간에 이견이 없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정상회담의 단초가 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베를린선언을 정부가 미국측에 알려준 것은 사전협의 차원이 아니라 통보에 가까웠다고 한다. 그렇다면 미국측이 불만스러웠을 것이다. 한국이 북한에 경협이라는 선물을 주어버리면 미국의 대북 카드가 약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중국은 한국정부가 남북정상회담 합의를 알려줄 때까지 북한으로부터 아무런 사전연락도 못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전통적인 북-중 관계에는 맞지 않는 일이다. 남북대화의 역사를 더듬어 보면 한미보다도 북-중이 훨씬 더 긴밀하게 공조했었다. 이번 정상회담 합의문에도 명기된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을 추진할 때는 김일성(金日成) 자신이 베이징을 밀행하며 조율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김일성이 남북대화 용의를 처음 천명한 것은 71년 8월 6일 노로돔 시아누크 캄보디아 국왕의 북한방문 환영연설에서였다. 그는 무조건적인 남북접촉을 제안했다. 당시 국제정세는 69년부터 72년 사이 키신저 미 국무장관의 중국 방문, ‘아시아안보의 아시아화’를 내용으로 한 닉슨독트린 발표, 미-중수교 등으로 급변하는 분위기였다. 중국은 70년 4월 저우언라이(周恩來)를 비밀리에 평양에 보내 미국과의 수교문제를 처음 설명했다.

▷김일성은 70년 10월에 이어 71년 11월1∼3일 베이징에 가 마오쩌둥(毛澤東)과 저우로부터 한반도문제에 대한 미국측 입장을 직접 전해 듣는다. 판문점에서 남북적십자 예비접촉이 처음 이루어진 것은 71년 11월 20일이다. 북한과 중국은 이렇게 국제정세 변화에 대해 긴밀하게 협의하면서 남북대화 필요성에 인식을 같이 한 것이다. 이때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은 닉슨의 방중 전 그와 회담을 갖고자 했으나 거절당한 처지였다. 그때에 비하면 이번에는 거꾸로 한국정부가 미국과의 사전 협의를 소홀히 했는지 모른다. 남북한과 미-중은 서로 특별한 이해관련국이다. 남북정상회담 같이 중요한 일이 있을수록 긴밀히 협의하고 협력해야 할 것이다.

<김재홍논설위원>nieman9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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