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월드]푸틴 舊소련 15개共 재규합 가능할까

  • 입력 2000년 4월 18일 19시 28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당선자는 16∼17일 당선 후 처음으로 영국 방문길에 오르면서 대(對)서방 접촉을 시작했다. 서방언론의 관심은 아직도 베일에 싸인 부분이 많은 푸틴의 일거수일투족에 쏠렸다. 그러나 그의 영국방문 일정은 지극히 짧았다. 16일 밤 늦게 영국에 도착해 17일 오전 토니 블레어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진 뒤 곧바로 영국을 떠났다.

서방언론은 별반 주목하지 않았지만 푸틴의 이번 순방에는 중요한 일정이 별도로 있었다. 16일 영국 방문에 앞서 벨로루시에 먼저 들르고 17일 돌아오는 길에 이틀 일정으로 우크라이나를 찾은 것.

푸틴이 대서방관계 못지않게 구소련 국가들로 구성된 독립국가연합(CIS)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엿보게 한 대목이었다.

▼CIS 의장직 이어받아▼

푸틴은 지난해말 대통령권한대행이 된 지 3주 만인 1월26일 CIS 정상들을 모스크바로 불러 ‘신고식’부터 가진 뒤 보리스 옐친 전대통령이 맡았던 CIS 의장직을 이어받았다. 러시아가 여전히 CIS의 맏형임을 확인한 절차였다.

러시아는 냉전종식과 함께 15개 공화국으로 쪼개져버린 구소련 국가들을 재규합하겠다는 열의를 끊임없이 보여왔다. 그러나 새 세기에 들면서 CIS는 러시아를 중심으로 뭉치기보다 각자 살길을 찾아서 흩어지려는 경향이 더욱 강하다는 느낌이다.

여기에는 러시아의 힘을 더욱 약화시키려는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등 서방측의 움직임도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푸틴은 9일 그루지야 대통령선거에서 재선된 에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에게 축하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2005년까지 NATO에 들어가겠다는”는 충격적인 선언이었다.

97년 흑해함대 분할을 둘러싸고 러시아와 갈등을 빚었던 우크라이나도 이미 유럽연합(EU)과 NATO에 가입할 의사를 밝힌 바 있어 그 충격은 더욱 컸다.

만에 하나 카프카스지역의 전략요충지인 그루지야의 NATO 가입이 이뤄진다면 이는 미국 등 서방세력이 러시아의 ‘안방’에까지 밀고 들어오는 것과 다름이 없다.

▼중앙아시아 脫러 움직임▼

탈(脫)러시아 움직임이 특히 두드러진 지역은 중앙아시아. 최근 미국이 이 지역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위해 적극적인 외교전을 펼치면서 러시아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은 14일부터 일주일 일정으로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3개국을 돌고 있다.

이에 앞서 지난달 조지 테네트 중앙정보국(CIA) 국장과 이달초 루이스 프리치 연방수사국(FBI)국장이 이 지역을 다녀갔고 다음달 FBI가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지부를 설치할 예정이다.

중앙아시아는 러시아군이 주둔하고 있고 카자흐스탄에는 바이코누르 우주기지가 있어 러시아로서는 양보할 수 없는 지역. 푸틴도 26일 유럽과 아시아 각국이 참가하는 ‘유라시아 경제정상회의’ 참석을 명분으로 카자흐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을 차례로 방문해 정치 경제현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흔들리는 것은 미국이 대규모 유전개발투자를 약속하는 등 경제적인 이점도 있지만 러시아의 우산 밑에서는 안보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러軍 억지력 발휘못해▼

이슬람원리주의 세력들이 국가안보에 위협을 가하고 있고 세계적인 마약생산지로서 조직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러시아군은 큰 역할을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동맹국인 터키를 앞세워 카스피해 인근 산유국인 아제르바이잔에서도 영향력을 확대해가는 추세다. 몰도바도 인근 루마니아와의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강력한 러시아의 재건’을 내세운 푸틴의 희망과는 달리 CIS 국가들은 각자 제 갈길을 가고 있다.

▼독립국가연합(CIS)란▼

91년 소련해체후구소련 15개 공화국 중 발트 3국을 제외한 12개국이 모여 출범한 국가연합. 사무국 등 주요기구는 벨로루시 수도 민스크에 있다.

출범 당시 구소련군을 CIS통합사령부 밑에 두고 러시아 루블을 단일통화로 하는 등 외교 국방 통화를 공동 관장키로 했다.

그러나 국가간 이해가 엇갈리면서 독자군대를 창설하고 별도 화폐를 발행하면서 분열이 가속돼 이제 역내 왕래에도 비자가 필요할 만큼 멀어졌다. 97년 러시아 등 5개국이 관세동맹을 맺고 경제공동체를 구성키로 하고 지난해 러시아와 벨로루시가 ‘국가연합’을 선포하는 등 재통합을 위한 노력도 있었지만 가맹국의 독자노선은 오히려 강화되는 추세.

CIS는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분쟁과 그루지야 내전 등 역내 분쟁도 조정하지 못하는 등 점차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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