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철이 지난해부터 경기 의왕시 백운저수지 인근에서 운영 중인 카페에서 최근 그를 만났다. 그는 “26년 동안 연기 생활하며 이런 기회가 올 줄은 몰랐다”며 호탕하게 웃는다.
―최수종한테 미안하겠다.
“물론이다. 드라마 150회 중 나는 100여회까지만 나오고 왕건에게 정권을 빼앗긴다. 그만큼 이 드라마는 분명 왕건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말이다.”
―초반부터 시청자들이 ‘태조 왕건’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시청자들, 특히 중년 남성들이 선 굵은 드라마에 대해 많은 갈증을 느꼈다는 걸 뜻하는 게 아닐까. 이전 작품인 ‘왕과 비’가 여인들의 궁중 암투에 초점이 맞춰진 것과 달리 이 드라마는 남자 이야기가 전체의 97%다. 탤런트 김혜리가 맡은 강비도 왕건과 궁예 사이에서 갈등하며 드라마의 멜로 요소를 극대화하는 캐릭터일 뿐이니까.그런데 걱정스러운 것은 ‘태조 왕건’이 ‘용의 눈물’처럼 오로지 ‘힘’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드라마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건 당신이 맡고 있는 궁예라는 ‘상품성’을 부정하는 것 아닌가?
“궁예는 왕건보다 훨씬 남성적이지만, ‘용의 눈물’의 태조 이방원은 결코 아니라는 얘기다. 예를 들어 첫회에 궁예가 순순히 항복하라는 메시지를 적진에 전하기 위해 보낸 사신이 적장의 활에 맞아 죽을 때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는 것이 그의 참모습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초반부 시청자를 끌기 위해 궁예가 앞장서 칼싸움을 해야 했다.”
―드라마 초반 왕건과 궁예를 신화화한 몇몇 장면이 눈에 거슬리기도 했다. 예를 들어 왕건이 태어날 때 하늘에서 광채가 쏟아지고, 궁예가 득도할 때 하늘에 미륵부처가 아른거린 것 등….
“…. 150회를 이어가기 위한 극적 장치로 봐달라. 드라마 ‘허준’에서도 허준이 의술은 물론 싸움과 연애에도 통달한 인물로 나오지 않는가.”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몸이 탄탄한데….
“연기자는 몸으로 먹고 사는 직업 아닌가. 10여년째 단전호흡을 해오고 있다. 하지만 나이를 속일 수는 없는지 영하 15도의 혹한에서 전투장면을 찍을 때는 입술이 파래지며 졸도 직전까지 갔다. 안에 쇠가죽을 대고 겉을 삼베로 감싼 눈가리개도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다.” 극 중에서 미끈거리는 대머리 위로 단단히 조이다보니 뒤통수와 눈 주위가 욱신거린다.”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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