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쪽형 인간]남편이 애가 됐어요

  • 입력 2009년 1월 5일 02시 57분


《사람의 뇌는 오묘하고 복잡하다. 뒤쪽 뇌가 정보를 저장하면 앞쪽 뇌는 이를 종합적으로 편집해서 행동을 결정하고 욕구를 조절한다. 앞쪽 뇌는 뒤쪽 뇌에 비해 고차원적인 업무를 담당한다. 앞쪽 뇌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능력이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저서 ‘앞쪽형 인간’을 통해 다양한 앞쪽 뇌 훈련법을 제안하는 나덕렬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의 ‘앞쪽형 인간’ 칼럼을 연재한다. 나 교수는 1982년 서울대의대를 졸업하고 1989년 신경과 전문의를 취득했으며 국내 처음으로 한국적 치매진단 치료 기준을 마련하기도 했다.》

편식 - 분노증세 ‘전두엽치매’ 조심

유능하던 50대 초반의 국내 최고경영자(CEO)가 몇 년 사이에 성격이 확 바뀌었다. 평소 쾌활하고 낙천적이던 사람이 화를 내는 일이 잦아졌다. 고집도 세지고 괴팍해졌다.

평소 절제하던 담배를 하루에 2갑 넘게 피우고 초콜릿을 앉은자리에서 10개나 먹는 등 음식 절제를 못해서 2년 사이에 체중이 20kg 늘었다. 조급증이 심해 외식 때 다른 가족의 식사가 덜 끝났는데도 “빨리 집에 가자”며 재촉했다.

그의 부인은 “과거의 우리 남편이 아니다”라고 했다. 한 기업과 가정을 책임지던 남편이 이제는 말썽 피우는 서너 살짜리 아이처럼 변했다는 것이다. 이 환자는 병원에서 진찰받은 결과 앞쪽 뇌(전두엽)만 주로 손상되는 전두엽 치매로 밝혀졌다.

이 CEO의 성격이 변한 이유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조사 결과 성격이 변하게 된 특별한 계기도 없었다. 주로 50대나 60대 초반에 발생하는 전두엽 치매는 아직까지 원인이 다 밝혀지지 않았다. 다행히 전두엽 치매는 매우 드물다.

퇴행성 치매는 나이가 들면서 뇌세포가 서서히 죽어가는 병이다. 크게 전두엽 치매와 알츠하이머형 치매로 나뉜다.

알츠하이머형 치매는 뒤쪽 뇌가 먼저 손상된다. 초기에 기억력, 방향감각, 계산력이 떨어지더라도 스스로 메모하고 주위 사람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그럭저럭 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다.

비록 기억력은 떨어져도 판단력은 정상이고 예절은 지킬 수 있기 때문에 사회생활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다가 알츠하이머병이 점차 심해져서 앞쪽 뇌까지 파급되면 이상한 행동을 보이면서 점점 정체성을 잃어간다. 알츠하이머형 치매 역시 정확한 원인은 알기 어렵다.

1972년 찰스 버터와 더그 스나이더 박사 연구팀은 흥미로운 원숭이 실험을 했다. 원숭이 무리에서 지도자인 왕원숭이들을 골라서 앞쪽 뇌에 손상을 준 다음 원래의 무리로 돌려보냈다.

그 결과 앞쪽 뇌에 손상을 입은 왕원숭이는 며칠 못 가서 최하위 서열로 밀려났다. 그 후 다른 학자들도 동일한 결과를 관찰했다. 심지어 앞쪽 뇌가 손상된 원숭이들은 얼마 못 가서 죽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CEO 환자 사례와 원숭이 실험 결과는 앞쪽 뇌가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준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잠시 불안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뒤집으면 희망의 메시지가 되기도 한다.

앞쪽 뇌가 손상되면 서열이 수직 하락하고 ‘더는 그 사람이 아닌’ 비극이 찾아온다. 반대로 앞쪽 뇌를 점검하고 계발하는 앞쪽형 인간이 되면 수직 상승은 시간문제다. 앞쪽 뇌를 잘 쓰면 지금보다 훨씬 더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나덕렬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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