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80돌 특집]'여성 상위시대'이끄는 女權기수들

  • 입력 2000년 3월 31일 21시 31분


"세상과 인식의 주체는 남성이다. 여성은 주체인 남성의 대상으로서만 존재한다.”

프랑스의 작가 시몬 드 보부아르가 자신의 책 ‘제2의 성’에서 여성을 남성의 종속적인 객체, 이른바 ‘제2의 성’이라며 반발했던 것이 1949년.

반세기가 지난 지금 여성의 지위는 당시에 비해선 놀랄 만큼 변했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가 지난해 밀레니엄 결산 특집에서 “여성 지위의 향상이야말로 지나간 천년의 가장 심오한 혁명”이라고 평가했을 만큼 세계 각국의 정계 재계 사회 분야에서 여성의 진출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정치〓올들어 세계 각국의 여성 정치인들이 각 분야에서 ‘최초’의 타이틀과 함께 각 분야 최고직에 잇따라 진출했다. 우먼파워 열풍이 일어나고 있는 것.

최근 독일 야당 기민당(CDU)의 새 총재후보로 지명된 안겔라 메르켈(45). 그는 11일 전당대회에서 2차 세계대전말 CDU 창당 이래 최초의 여성 당수가 된다.

지난달 대만에서 천수이볜(陳水扁) 민진당 총통후보와 함께 반세기만의 정권 교체를 실현했던 뤼슈롄(呂秀蓮·56)부총통 당선자 역시 대만 최초의 여성부총통. 1970년대 ‘신여성주의’를 주창해 이름을 떨친 뤼슈롄은 하버드대 법대 출신의 엘리트로 민주화를 위해 옥고까지 치렀다.

가까운 일본에서 첫 여성지사가 탄생한 것도 2월초였다. 통산성 심의관 출신인 오타 후사에(太田房江·48)가 오사카(大阪) 지사 선거에서 당선했다. 1945년 일본이 패전 후 미군정하에서 직접선거로 지사를 뽑기 시작한 지 53년 만의 일.

2월 북유럽 핀란드에서는 사민당의 타르야 할로넨이 핀란드 최초로 여성대통령에 선출되면서 여권신장의 기세를 올렸다. 스리랑카는 여성 대통령 찬드리카 쿠마라퉁가의 어머니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가 총리여서 세계에서 유일하게 모녀가 총리와 대통령으로 활동하고 있다.

뉴질랜드와 아일랜드도 빼놓을 수 없는 여성 정치강국. 뉴질랜드는 지난해 12월 총선에서 헬렌 클라크가 총리에 당선됐고 전임자 제니 시플리도 뉴질랜드 최초의 여성총리였다. 아일랜드는 97년 10월 대통령에 당선된 매리 매컬리스와 전대통령 매리 로빈슨이 모두 여성이다.

바이라 비케 프라이베르 라트비아대통령은 지난 해 동유럽 최초의 여성 국가원수가 됐다.

인도네시아의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부통령과 필리핀의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 부통령은 차기 대선에서 대통령직을 노리는 동남아시아의 여성 정치인들. 파나마 대통령 미레야 모스코소대통령과 방글라데시 총리 셰이크 하시나 와제드도 여성이다.

올 1월 세계 최초로 모든 선거에서 각 정당이 남녀동수의 공천자를 내도록 의무화한 법안을 통과시킨 프랑스에서는 야당 공화국연합(RPR)의 여성 당수 미셸 알리오 마리가 여성 정치인의 대표주자로 떠올랐다.

▽경제·사회〓칼리 피오리나와 하이디 밀러. 지난해 10월 미 경제잡지 포천이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경영인’으로 1, 2위에 선정된 인물들이다.

밀러는 금융계의 강자 시티그룹의 최고 재무담당 경영자(CFO)였다가 2월에 인터넷 기업 프라이스라인닷컴의 CFO로 옮겼다. 일부에서 자리를 옮긴 것은 잘못된 선택이라고 하자 “프라이스라인닷컴은 완벽한 전자상거래 모델을 가진 회사로 앞으로 모든 상거래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지구촌 곳곳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일에 힘써 온 ‘여전사’들도 새천년에 주목받는다.

90년대 들어 성폭력을 보편적인 인권문제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를 받는 샬럿 번치 미 럿거스대 교수는 21세기 여성운동의 선두주자. 93년 오스트리아 빈, 95년 중국 베이징(北京)의 유엔인권회의에서 잇따라 여성인권 지지선언을 이끌어낸 번치 교수는 ‘글로벌 페미니즘’과 세계 여성운동 조직들을 네트워크화하는 것이 21세기 여권운동의 과제라고 말한다. 그 자신이 동성연애자이며 여성 명예의 전당에 올라 있다.

파키스탄에서 대형법률회사를 운영하는 여성변호사 아스마 자항기르도 차세대 여성인권운동가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82년 군부정권 하에서 대규모 집회를 주도, 투옥되기도 한 자항기르는 인간의 기본권조차 자주 제한받는 이슬람 사회에서 여권 신장운동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이종훈기자>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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