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세상읽기]벤처열풍은 계속돼야 한다

  • 입력 2000년 3월 21일 19시 34분


지난 한 주일 내내 코스닥 시장은 약세에 약세를 거듭했다. 20일에는 무려 258개의 하한가를 기록하면서 종합지수 230선이 일시적으로 무너지기도 했다. 거래량이 급감한 가운데 거래대금도 2조5000억원에 못미쳐 두 달만에 처음으로 거래소 시장에 뒤졌다. 증시 전문가들은 당분간 코스닥 시장이 약세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투자자들에게 보유 주식을 처분하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코스닥 시장의 주가 요동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벤처 열풍은 계속되고 있다. 이 열풍은 투자자뿐만이 아니라 유수한 재벌기업의 안정된 일자리를 박차고 창업의 물결에 몸을 던지는 젊은 일꾼들의 모습에서 더욱 분명하게 감지된다. 이런 변화를 마뜩찮게 여기는 사람들은 ‘벤처 거품’이 제조업을 망친다고 탄식을 늘어놓는다. 한때 ‘전경련의 전위대’로 통했던 자유기업원의 공병호 전 원장마저도 벤처기업으로 보금자리를 옮기는 세상이니 탄식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런데 이런 논란을 보면 엉뚱하게도 저 세상으로 떠난 지 무려 230여 년이 지난 프랑수아 케네(1694∼1774)가 떠오른다. 케네는 베르사유 궁전에서 왕가의 주치의를 지낼 정도로 뛰어난 외과의사였는데 만년에 손을 댄 경제학 분야에서도 놀라운 업적을 남겼다. 특히 국민경제의 순환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 ‘경제표’(經濟表)’는 그야말로 세월의 벽을 훌쩍 건너뛴 천재적 작품이었다. 경제발전론 분야에서 획기적인 업적을 이룬 공으로 1973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던 레온티에프가 그 상을 자신에게 안겨준 산업연관분석(input-output-analysis)이 케네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라고 밝혔을 정도니 말이다.

그런데 천재 케네도 큰 착오를 범했으며, 이 착오를 반복하는 사람은 지금도 많다. 그것은 오직 농업만이 국부(國富)의 유일한 원천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래서 케네와 추종자들은 중농학파(重農學派)라는 이름을 얻었다. 당시 프랑스 경제활동 인구의 85%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농민을 부유하게 만드는 것이 곧 국부를 증진하는 길이라고 한 케네의 견해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영국 신흥 공업도시 글래스고의 대학교수 애덤 스미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제조업이 창출하는 거대한 부를 날마다 자기 눈으로 목격했던 스미스는 1776년에 펴낸 그 유명한 ‘국부론(國富論)’을 통해 중농학파의 논리적 오류를 완벽하게 증명해 보였다.

스미스가 체계화된 경제학을 창시한 이래 부국강병에 관심이 있는 권력자들은 누구나 제조업을 중시하게 되었다. 시커먼 연기와 폐수를 내뿜는 산업시설이 이른바 ‘공장굴뚝 문명 시대’ 국부의 원천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 문명에 눈이 익은 사람들은 제조업이야말로 ‘진정한’ 국부의 원천이며 다른 것들은 모두 보조적 주변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터넷 등 정보통신이나 환경 분야 등 위험도 크고 수익성도 높은 사업에 돈과 자원, 인재가 몰리는 현상에 대해 내심 불안과 불만을 품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케네가 범했던 것과 같은 종류의 착오를 범하고 있다.

산업화된 현대국가에서는 농업종사자가 경제활동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를 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도 주요 농업생산물은 사회의 수요를 충족시키고 남는다. 그래서 과잉생산으로 인한 가격폭락을 막기 위해서 휴경(休耕) 보상제도를 실시하는 나라도 하나 둘이 아니다. 이것은 인구가 줄거나 사람들이 옛날보다 덜 먹어서가 아니라 농업의 생산성이 높아진 탓이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것과 같은 기술 발전이 계속되면 제조업도 언젠가는 농업과 같은 운명에 빠질 것이며 이것은 결코 슬퍼하거나 탄식할 일이 아니다.

제조업과 농업에 각각 취업자의 5% 정도가 일하는 것만으로도 농산물과 공산품에 대한 사회적 수요를 모두 충족하고 남는 사회를 생각해 보자. 나머지 90%는 무엇을 할 것인가. 코스닥 시장의 투자 열풍은 이 의문에 대한 대답이다. 벤처 투자는 계속되어야 하고 또 분명 계속될 것이다.

유시민<시사평론가>denkmal@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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