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지방공기업 '우후죽순' 설립…'空무원 양로원' 인가

  • 입력 2000년 3월 20일 19시 32분


전국의 각 지방자치단체가 설립한 지방공사와 지방공단 등 지방공기업이 대부분 적자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데다 임직원 중 상당수가 해당 자치단체 공무원 출신이어서 ‘봐주기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지난해 4월 행정자치부의 설립 인가권이 폐지돼 각 자치단체가 임의로 지방공기업을 설립할 수 있게 된 뒤 지방공기업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각 자치단체가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한 퇴직 공무원들을 염두에 두고 지방공기업을 설립한 것이 아니냐고 지적하고 있다.

20일 행자부에 따르면 지방공기업 설립 인가권이 폐지된 지난해 4월 75개였던 지방공기업이 1년만에 90개로 늘어났다.

이에 따라 행자부는 최근 “퇴직 공무원들을 위해 지방공사나 지방공단을 설립하는 것을 억제하라”는 공문을 각 자치단체에 보냈다.

▼퇴직공무원 요직차지▼

광주시가 지난해 6월 설립한 광주시도시공사는 사장을 제외한 이사와 부장 등 간부 7명이 모두 광주시 공무원 출신. 이 때문에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부산시 산하 공기업의 경우도 고위 공무원 출신이 대부분의 임원직을 차지하고 있다. 부산도시개발공사 사장과 업무이사는 각각 부산시 기획관리실장과 부산 서구부구청장 출신. 부산시설관리공단 이사장은 남구부구청장 출신이며 상임이사는 금정구 총무국장 출신이다. 올 1월 설립된 환경시설관리공단 이사장도 부산시 건설본부장 출신이고 전 부산시 청소관리과장이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강원도의 경우도 강원개발공사와 춘천시 주차시설관리공단, 철원군 농특산물유통공사, 속초시 시설관리공단 등 지방공기업 요직을 전직 공무원들이 차지하고 있다.

또 충남도도 올 6월 발족시킬 충남도 복합시설관리공단의 감사와 상임이사 등에 4,5급 공무원 출신을 선임할 계획이다. 이 때문에 “명퇴 공무원 해소책으로 공단을 만들려 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경남도가 97년 1월 설립한 경남개발공사도 직원 36명 중 8명이 공무원 출신이며 지난해 9월 설립된 전북개발공사는 전체 직원 33명 가운데 10여명이 전직 공무원이다.

▼방만 경영▼

전북도의회는 현재 전북개발공사의 기구가 방만하고 타당성이 적은 사업을 추진한다며 조사특위를 구성해 실태조사를 벌이고 있다.

조사특위는 전북개발공사가 전주시 중화산동 화산지구에 지을 예정인 공영아파트에 대해 △평당 분양가가 전주시내 일반아파트 분양가보다 월등히 높아 분양 성공 가능성이 낮고 △사업비가 중간에 60억원이나 증액되는 등 특정 업체와 유착의혹이 있다며 사업 중지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전북도의회 이한수(李漢洙)의원은 “공사 자체의 사업 보고서에도 아파트를 짓는 것보다 땅을 매각하는 것이 훨씬 이익이라고 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구를 유지하기 위해 공사를 강행하려 한다”며 “지방공기업들이 기업성과 공익성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사업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남개발공사는 최근 조성한 경남 진주시 금산지구 1만8000평과 양산시 웅상지구 등 3만여평의 택지를 분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지난해 120여억원을 들여 창원시 신월동에 자체 사옥 건립을 추진하다 도의회가 “어려운 여건에서도 방만한 경영을 한다”며 반대하자 유보한 상태다.

현재 설립을 추진중인 충남도 복합시설관리공단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일선 시군의 시설관리업무가 민간에 위탁되고 있는 추세인데도 충남도는 오히려 별도의 공단을 만들어 민간영역을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행자부 대책▼

행자부는 최근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력 해소차원에서 무분별하게 지방공기업을 설립하는 것을 억제토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행자부는 자치단체에 보낸 공문을 통해 “최근 설립되고 있는 공기업들이 대부분 체육시설이나 주차장 관리를 위한 것들로 지역의 특성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행자부는 지방공사나 공단 설립시 △공신력 있는 전문기관에서 타당성 조사를 먼저 받고 △주민 의견수렴 등의 절차를 거쳐 공공서비스 효과가 큰 사업을 위주로 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진영기자·전주·부산〓김광오·조용휘기자> ko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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