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강수진/ '대만 斷交' 후유증

  • 입력 2000년 3월 16일 19시 35분


14일 대만 타이베이(臺北) 외교부에서는 대만 총통 선거 취재를 위해 몰려든 각국 취재진을 환영하는 리셉션이 열렸다. 이 자리에 청젠런(程建人) 외교부장(장관)이 참석해 환영 연설을 한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다.

재치있는 농담을 섞어가며 질문에 답하던 천부장은 누군가 한국과의 항공운항 재개시기를 묻자 갑자기 얼굴이 굳어지면서 목소리가 싸늘해졌다. 그는 “92년 대만과 단교할 때 한국 정부는 대만에 대해 매우 무례했다. 그 때 한국 정부가 취한 태도는 대만인들에게 아주 나쁜 인상을 심어줬다”며 한국의 ‘과거’를 성토했다. 그는 “한국이 아니라 ‘당시의 한국 정부’”라는 표현을 했지만 수백명의 외신 기자들 사이에서 그런 얘기를 듣는 순간 가슴이 뜨끔했다.

청부장은 최근 한국과의 인적 물적 교류가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긍정적으로 관계가 발전하고 있다고 덧붙였지만 아직도 단교 당시의 섭섭함이 가슴속에 남아있다는 사실을 숨기지는 못했다.

거리에서 만난 대만인들도 마찬가지였다. 택시 운전기사 장중이(張忠義)는 총통 선거 취재를 위해 한국에서 왔다는 말에 대뜸 “한국이 옛날에 대만과 단교한 일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한국 사람들은 대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특파원으로 근무하다 단교 후 귀국한 한 대만 언론인은 “대만인들은 단교 직전까지 아니라고 잡아뗀 한국을 믿었다가 큰 상처를 입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만에서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한국의 119 구조대가 날아와 구조활동을 펼치고 최근에는 한국의 젊은 가수들이 대만에 진출해 젊은 대만인들 사이에서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좋아졌다. 그러나 8년전 한국정부의 매끄럽지 못한 단교 절차가 남긴 후유증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다.

인간관계와 마찬가지로 국제관계에서도 상처가 아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절감한 하루였다.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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