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한기흥/매케인의 몽니

  • 입력 2000년 3월 12일 19시 49분


미국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지명전에서 중도 하차한 존 매케인 상원의원과 민주당 대통령 후보지명전에 나섰던 빌 브래들리 전 상원의원의 대조적인 태도가 눈길을 끌고 있다.

매케인은 7일 ‘슈퍼화요일’ 예비선거에서 조지 W 부시 텍사스주지사에게 완패, 후보지명이 어려워지자 9일 “당원의 뜻을 존중해 선거캠페인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부시가) 미국의 다음 대통령이 되길 기원한다”고 말했으나 그를 지지한다는 발언은 끝내 하지 않았다.

반면 민주당의 브래들리 전 상원의원은 같은 날 경선 포기를 선언하며 “앨 고어 부통령이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돕겠다”고 천명했다.

프로농구선수 출신인 브래들리와 군 출신인 매케인이 서로 승패에 관한 가치관에서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두 사람의 태도는 크게 대비됐다.

이 때문에 공화당은 평소 ‘독불장군’으로 불려온 매케인의 이같은 태도가 대선을 앞두고 당의 단합을 해칠까 우려하는 눈치다.

일부 중진의원이 매케인과 부시의 예비선거 과정에서 쌓인 감정의 앙금을 씻고 화해할 수 있도록 두 사람의 만남을 중재하려 했지만 매케인은 “부시를 지지할 생각도, 조기에 만날 생각도 없다”며 냉정히 뿌리쳤다.

비록 당내 경선에서는 졌지만 민주당과 무당파 유권자들로부터는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매케인으로서는 부시에게 고개를 숙이는 게 자존심이 상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같은 매케인의 행동은 스포츠든, 선거든 정당한 승부의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미국 사회의 관행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미국 언론은 이를 매케인이 부시의 대선 행보를 지켜보며 4년 뒤 대선에 다시 도전하기 위해 정치적 입지를 잃지 않으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어쨌든 공화당은 당분간 적지 않은 경선 후유증에 시달려야 할 것 같다.

한기흥<워싱텅 특파원>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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