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꿀바른 毒 '밀어내기 수출'

  • 입력 2000년 3월 2일 19시 57분


지난달 16일 산업자원부의 대통령에 대한 업무보고장.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무역수지가 1월에 이어 2월에도 적자가 클 것 같다”며 걱정했다. 이후 무역수지는 초미의 관심사가 됐고 대책회의가 부산히 열렸다.

보름 만인 1일. 2월 무역수지를 집계한 산자부는 “8억달러라는 예상 외의 흑자가 났다”고 발표했다. 불과 며칠전까지만 해도 “수지 균형을 맞추도록 노력하겠다”던 입장과 비교하면 의외의 결과였던 듯 담당직원들도 “뜻밖”이라는 말을 몇번이고 되풀이했다.

과연 그 보름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정부는 다른 달에 비해 ‘월말 수출 집중현상’이 특히 두드러져서 나타난 결과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월말이면 수출이 급증하는 측면이 있는 건 사실이다. 정부의 말대로 민관이 막판에 열심히 뛰어서 나온 성과라면 축하할 일이다.

그러나 ‘큰폭 적자 전망→대폭 흑자’로의 갑작스러운 반전은 많은 사람들에게 ‘깜짝쇼’처럼 비친다. 무역업계의 오랜 관행인 ‘밀어내기’를 정부가 독려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밀어내기가 실제로 있었건 없었건간에 무역수지를 둘러싸고 지난 보름간 벌어진 일은 무역수지가 우리경제에 얼마나 중요한 지표인지를 재확인시켰다.

그렇지만 그 중요성을 깨닫는 것보다 더 경계해야 할 것은 무역수지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끌고 들어가는 ‘함정’이다. 무역흑자의 지나친 강조는 과거 우리 경제를 왜곡되게 한 성장주의 논리의 변형이다. ‘꿀을 바른 독약’처럼 당장의 흑자는 달콤하지만 그 끝은 쓰디 쓴, 위험한 유혹일 수 있다.

과거 그 유혹에 번번이 넘어가는 바람에 우리의 수출구조는 내실을 다지지 못했다. 환율이 조금만 떨어져도 “수출을 못한다”는 업체들의 아우성도 어찌보면 이같은 ‘흑자 캠페인’이 낳은 결과다. 당장의 무역흑자에 일희일비가 아닌, 우리 수출현실에 대한 냉철한 ‘클로즈업’이 필요할 때다.

<이명재기자> 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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