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교통선진국]국내 안전교육 실태

  • 입력 2000년 2월 14일 19시 59분


“편도 1차로인 지방도로에서 버스가 정류장에 정차 중입니다. 반대편 차로에는 멀리서 버스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 때 정차해 있는 버스 뒤의 승용차가 앞지르기를 시도한다면 어떤 위험이 있을까요?” (강사)

“버스에서 내려 버스 앞으로 도로를 횡단하는 승객을 칠 수 있습니다.”(수강생)

“앞지르기를 시도하는 도중 반대편 버스 뒤에서 마찬가지로 앞지르기를 시도하는 차량과 충동할 수 있습니다.”(수강생)

서울 서초구 염곡동의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에서 실시하고 있는 교통소양교육 현장. 이곳에선 교통사고를 내 면허정지를 당한 운전자들을 위한 재교육이 실시되고 있다.

강사가 주어진 상황을 제시하면 수강생들은 예상할 수 있는 갖가지 위험을 예로 든다. 토론식으로 진행되는 일종의 ‘방어운전’ 교육 방식이다. 강사는 상황과 동일한 실제 사고 사례를 말해주기도 한다.

“98년 2월 25일 강원 횡성군 공근면 시외버스정류장에서 정차해 있던 시외버스를 앞지르던 승용차가 반대편 차로에서 버스를 앞지르던 화물트럭과 충돌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이 사고로 승용차 운전자와 동승자가 사망하고 화물차 운전자 역시 중상을 입었습니다.”

도로교통공단에서는 법규위반이나 음주운전사고, 교통사고 등으로 벌점 40점 이상을 받아 면허정지 처분을 받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교통소양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교통사고자교육(6시간)은 의무적이지만 법규위반자나 음주운전자를 대상으로 한 교육(각 4시간)은 의무사항이 아니고 교육을 받으면 면허정지 일수를 20일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서 모든 면허정지 처분 대상자를 상대로 의무적으로 최소 8시간 이상의 안전운전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크게 부족하다. 또한 대부분의 교육이 일방적인 강의와 비디오 시청 등 실내 교육에 그쳐 효과도 의문시되고 있다.

한 교통 전문가는 “일본이나 유럽에서는 넓은 시멘트 바닥에 물을 뿌려놓고 급제동을 체험케 하거나 안전벨트를 안 맨 상태에서 차를 좌우로 회전시켜 위험을 몸소 체험케하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교통안전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도 민간업체 가운데 이처럼 체험식의 교육을 실시하는 곳이 있다. 경기 용인의 에버랜드 내 자동차경주장에서 실시하는 ‘드라이빙 스쿨’(0335-320-8981)이 그것.

이곳에선 개인이나 단체의 자발적인 신청을 받아 실제 자동차경주를 벌이는 주행코스(2.125km)에서 바른 운전자세와 사고위험 예방, 고급 운전기술 등을 가르치고 있다.

프로그램은 △전문 운전자 시범 교육 △눈길 빙판길에서의 브레이크 작동 요령 △사각지대 보기 △장애물 통과 운전 △고속으로 주행할 때 급커브 대처 방법 등.

94년 문을 연 이후 이곳에서 2500여명의 운전자가 교육을 받았다. 20, 30년 경력의 고속버스 운전사와 교통경찰, 청와대 경호원, 주부 등 교육 대상자 계층도 다양하다. 교통사고 과실범이 많이 수감된 경기 수원교도소 재소자들도 매달 이곳에서 위탁교육을 받고 있다.

대림자동차 안전운전보급팀(02-2267-6111)도 체험식 안전교육을 시키고 있는 민간업체 중 하나. 96년부터 서울 한강고수부지 이촌지구 청소년광장 안에 ‘한강 모터스포츠 교실’을 열고 성인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오토바이 안전운전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전승훈기자>raphy@donga.com

▼전문가 기고/시간때우기식 교통교육 내실 기할때▼

‘병든 교통 문화’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병폐 중 하나다. 문화는 일상의 생활을 통해 표출되기 때문에 잘못을 고치기 위해서는 국민 모두의 동참이 절실하다.

우리나라의 교통안전교육은 학교교육과 운전자교육, 운수업체교육 등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내용과 형식 면에서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

유치원과 학교에서의 교육은 ‘빨리 빨리’ 습성이 형성되기 전의 교육이기 때문에 평생교육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교육 단계이다. 그러나 변변한 담당교사가 없고 교재도 제대로 구비돼 있지 않는 등 아직 전문성과 책임성을 기대하기엔 어려운 실정이다.

면허교육은 운전기능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게 현실. 타인을 죽이거나 다치게 할 수 있는 ‘물건’을 운전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책임과 안전의식을 제대로 깨우쳐 주지 못하고 있다.

법규 위반자나 사고 유발자를 대상으로 한 교정교육은 면허정지 처분일수를 줄이기 위한 ‘시간 때우기 교육’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이나 재산, 사회질서를 지키도록 하기 위해서는 교통사고 희생자에 대한 봉사활동 등 사고 재발을 막을 수 있는 실질적인 교육이 절실하다.

병든 교통문화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또한 공공기관이나 기업체, 지역의 각종 연수 등에서도 교통안전교육을 채택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생명 존중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가치다. 교통사고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파괴할 수 있는 위험한 행위다.교통사고를 내고도 단지 ‘재수없는 일’로만 여긴다면 교통문화는 바꿔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교통문화를 획기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인간의 모습을 한’ 교통문화를 가꾸려는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민만기(녹색교통운동 사무처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