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형근 파문'

  • 입력 2000년 2월 12일 23시 35분


검찰의 정형근(鄭亨根)의원 전격 연행시도로 빚어진 정국 한파가 더욱 꽁꽁 얼어붙는 양상이다. 한나라당은 검찰의 1차 연행작전 실패 직후 이 작전을 ‘야당 파괴행위’로 규정한 데 이어 일요일인 어제 긴급 당직자 회의를 열고 정의원의 소환불응 방침을 재확인했다. 정의원은 이와 별도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맹비난하는 발언을 쏟아놓는 등 ‘투쟁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검찰의 ‘섣부른 법집행’이 벌집을 쑤셔놓은 듯한 분위기다.

이번 일은 형식상 검찰과 정의원이 당사자다. 정의원에 대한 고소사건 또는 정의원이 고소한 사건을 처리하기 위한 통상적 절차라면 정치권이 시끄러울 하등의 이유가 없다. 검찰은 정해진 법 절차에 따르고 정의원은 그에 응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겉과 속’이 다르게 보이는 일련의 상황이 문제다. 요컨대 검찰의 행동이 자체 판단에 따른 것이 아니라 ‘외부’의 정치적 의도가 개입된 ‘정치적 사건’으로 비쳐진 데에 원인이 있다. 외부개입이 사실이라면 검찰의 독립성 문제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사건에서 비롯된 검찰의 내홍(內訌)이 자칫하면 지난해 검찰항명파동과 같은 진통을 가져오지 않을까 걱정된다. 총선 2개월을 앞둔 예민한 시기에 ‘정의원 긴급체포’라는 결정을 내린 것은 검찰의 독자적 판단으로 볼 수 없다는 일부 검사들의 지적이 심상치 않다. 현역 국회의원을 법원의 체포영장도 없이 잡아가려 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작전실패’ 책임을 물어 서울지검 간부 2명을 전격적으로 사실상 좌천시킨 처사는 ‘외압’ 의혹을 더욱 짙게 한다.

일선의 소장검사들은 “우리가 파리 목숨이냐”며 술렁거리고 있다는 보도다. 정치적 의혹이 짙은 특정인 체포작전에 실패했다고 해서 치욕적인 좌천조치를 취한 것은 내부의 불만을 살 만하다. 과연 인사권자인 법무장관이 정상적으로 인사권을 행사했는지 의문스럽다는 게 일부 소장검사들의 얘기다. 결국 이번에도 정치적 의혹 탓에 검찰만 안팎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됐다.

지난해 옷로비 의혹사건으로 검찰이 ‘오물’을 뒤집어쓰게 만든 것도 정치권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정치권의 외압이 있었다면 옷사건이 준 교훈이 아무 쓸모없이 돼버린 꼴이다. 총선을 2개월 앞둔 지금 검찰은 불법선거운동 단속이라는 막중한 일을 해야할 시기다. 이런 때에 검찰이 정치적 상황에 의해 내부의 갈등이 심해진다면 이는 심히 우려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