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외교는 정권보다 중요하다

  • 입력 2000년 2월 11일 20시 21분


외교통상부의 인사행정과 조직의 난맥상을 비판한 이장춘(李長春)본부대사의 한 언론 기고가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현직 고참 외교관이 외교부 내부의 문제점을 그런식으로 들춰낸 방식에 대해서는 무조건 동의할 수 없는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대사의 기고내용에 주목하는 것은 그안에 우리 외교부의 실상과 정치권력의 부당한 개입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기때문이다.

특히 외교부 인사에 대한 이대사의 지적은 많은 문제점을 생각케 한다. 그는 "김대중(金大中)정부가 출범한지 1년 10개월 사이에 3번째 외무장관이 등장했다" "신설한지 9년도 안된 외교정책실에 11번째의 장이 임명되었다" "현정부 출범이후 국장급 이상의 자리에서 물러난 사람이 50여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같은 인사가 정치권력에 의해 좌지우지(左之右之)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이대사는 지난번 홍순영(洪淳瑛)외교부장관의 경질이 '권력의 인사청탁을 거절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시 예기치 못했던 홍장관 경질의 주된 원인이 '동교동계의 압력' 때문이었다는 설(說)을 뒤받침해주는 셈이다.

이같은 조령모개(朝令暮改)식 정치인사로는 외교관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고도의 전문성과 업무의 연속성을 기대할 수 없다. 더구나 외교부 고위인사들이 국내정치의 필요에 따라 또는 권력의 '바람'에 따라 윈칙없이 교체된다면 교섭 상대국이 우리의 대외 창구를 신뢰할 리 없다. "구멍가게 주인도 자주 바뀌면 장사가 잘 안된다"는 이대사의 말은 옳다. 이 때문에 정치권력은 외교와 한발 떨어져 있어야 하고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그 독립성은 가능한 한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원칙을 선진국들은 준수하는 것이다.

세계화 국제화가 가속됨에 따라 외교관의 정예화와 조직의 효율성은 더욱 강조된다. 그럼에도 우리의 외교체계는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능력을 따지기 보다는 '한 자리'를 주기 위한 정치적 임명대사가 낙하산 식으로 내려오는 경우가 아직도 적지 않다. 인사 적체때문에 연구기관 심지어 지방자치단체에 까지 대사직을 가진 사람이 파견되는 상황이다. 몸집만 비대하다 보니 제대로 움직여야 할 때는 못 움직임이고 내부적으로는 안일과 타성에 젖어 있는 것이 우리 외교부의 현실이다.

외교부는 이대사의 기고가 파문을 일으키자 조직개혁을 단행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정치권이 외교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는 일이다. 정치권이 오직 정권 차원의 필요성 때문에 무리하게 인사개입을 하려 들거나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외교개혁'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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