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345회)

  • 입력 2000년 2월 9일 20시 06분


체중이 놀랄 정도로 줄어들고 있어요. 나는 아마 여기 사흘 동안 묵고 갈 겁니다. 공기 맑고 아름다운 그곳에 가면 앓던 병도 나을 것 같다. 평생 소원 풀어주는 셈 치고 데려다 달라고 내가 울고불고 사정을 해서 여기 내려온 거예요. 그러니까 이곳에서의 글 쓰기는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아요. 병원에 가서 생각이 나면 당신 누님 편으로 또 편지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한 남자의 아내 노릇도 아이의 엄마 노릇도 못하고 마흔이 되어서야 진정으로 어머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제대로 해내지도 못한 실패한 예술가로서 이제 겨우 모성이란 것이며 그 세계관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을 때에 모성 자체를 뿌리채 앗아가는 병에 걸리다니, 인생은 참 묘하기도 하지요!

나 당신에게 부탁 한 가지 할게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당신이 내 갈뫼 노트를 다 읽을 즈음이면 우리들의 아이 은결이를 알게 되겠지요. 그곳에 있는 동안에 나는 당신이 모르기를 바랐지만 언젠가는 당장 달려가서 아기를 철창 사이로 내밀어 그애의 웃음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더랬어요. 그리고 한동안은 그애에게서 또 당신에게서 벗어나고 싶기도 했죠. 내게 가르쳐 주거나 베풀어 주지 못했던 것 남겨 두었다가 당신의 딸에게 모두 주시기 바랍니다.

당신도 이제는 나이가 많이 들었겠지요. 우리가 지켜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버티어 왔던 가치들은 산산이 부서졌지만 아직도 속세의 먼지 가운데서 빛나고 있어요. 살아있는 한 우리는 또 한번 시작해야 할것입니다. 당신은 그 외롭고 캄캄한 벽 속에서 무엇을 찾았나요. 혹시 바위 틈 사이로 뚫린 길을 걸어 들어가 갑자기 환하고 찬란한 햇빛 가운데 색색가지의 꽃이 만발한 세상을 본 건 아닌가요. 당신은 우리의 오래된 정원을 찾았나요.

윤희의 기록은 거기서 끝났다. 내가 누님에게서 전달 받은 마지막 편지는 구십육 년 여름이라고 되어 있었다. 나는 그네의 마지막 글귀를 기억한다.

당신은 그 안에서 나는 이쪽 바깥에서 한 세상을 보냈어요. 힘든 적도 많았지만 우리 이 모든 나날들과 화해해요. 잘 가요, 여보.

나는 한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나서 그것이 무엇이었던가를 독방에서 파악하는데 삼 년이 걸렸다. 국가 권력을 장악하려는 여러 가지 시도는 낡아 버렸거나 불필요한 일이 되어 버렸다. 지난 세기에 자본과 물질을 통하여 세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던 생각은 그것을 바꾸고 현실화 시키려는 과정에서 왜곡되었다. 오히려 그래서 이제 철골처럼 남아버린 명제가 소중해졌는지도 모른다. 민주주의와 집단의 민주적 원칙은 수백년 이래로 가장 생명력 있는 유산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불 탄 자리에서 골라낸 살림도구 같은 것이리라. 당과 조합의 갈등에서 벗어나 고전적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겠다. 아이들의 땅뺏기 놀이처럼 그침없이 한 뼘 두 뼘 자본이 남긴 것들을 되찾고 영역을 넓혀 나가야만 한다.

어느 여름 날 일어나 운동 시간에 나갔더니 방송이고 신문이고 난리가 나 있었다. 유신시대 이후 한강 남쪽에 번성한 중산층 구역에서 다리와 백화점이 차례로 붕괴했다. 민간 정부로서 외형은 바뀌었다지만 사실은 군사 파쇼의 이행기에 지나지 않았고 삼십여년 근대화의 종결인 셈이었다. 죽어 가고 살아 남고 그리고 무너진 시멘트와 흙더미 속에서 버티다가 구조되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일주일 이상이나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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