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Arts]활발해지는 유토피아의 연구

  • 입력 2000년 2월 8일 20시 19분


유토피아의 의미는 유토피아가 완벽한 세상을 그리고 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완벽하지 않은 것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데 있다. 유토피아는 피터 팬의 네버랜드(Neverland)나 토마스 모어의 ‘아무 데도 없는 곳(Noplace·유토피아라는 단어의 원래 의미)’이 아니라 조건만 충족된다면 지금 이곳에서도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얼핏 보기에는 공상에 불과한 것으로 보이는 유토피아가 정치적 프로그램을 결정하고, 발전을 향한 영감의 원천이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유토피아의 반대쪽에 서 있는 것은 디스토피아(dystopia)다.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나 ‘1984년’ 같은 소설, 집단자살로 끝을 맺은 사교집단, 파시즘, 공산주의 등이 그리고 있는 세계가 모두 디스토피아에 속한다. 디스토피아는 모든 것을 절대적으로 똑바르게 바로잡으려 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다시 말해서 디스토피아는 실패한 유토피아다.

20세기에는 유토피아의 꿈과 실패가 유난히 많았다. 따라서 최근 유토피아 연구가 이상할 정도로 시급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러셀 제이코비가 작년에 내놓은 책 ‘유토피아의 종말(End of Utopia)’은 유토피아 정신의 죽음과 현대 자유주의의 연약함을 애도했다. 최근에는 그레고리 클레이스와 라이먼 타워 사전트가 편집한 광범위한 유토피아 선집 ‘유토피아 독본(Utopia Reader)’이 출판됐고, 영국에서도 ‘페이버 유토피아 책(The Faber Utopia Book)’이라는 선집이 출간되었다.

올 가을에는 뉴욕 공립 도서관이 프랑스의 국립 도서관과 합작으로 유토피아에 관한 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두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유토피아 소설의 원고, 지도, 영상 자료 등 400점이 선보일 이 전시회는 일단 프랑스에서 여름에 먼저 문을 연 다음, 10월에 뉴욕에서 다시 개최된다. 한편 1975년에 설립된 유토피아 학회(http://www.utoronto.ca/utopia)는 ‘유토피아 연구’라는 학술지를 발간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유토피아적인 희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인터넷 역시 유토피아와 관련된 사이트들을 제공하고 있다. 이들 사이트 중 일부는 ‘users.erols.com/jonwill/uopialist.html’에서 볼 수 있다. 유토피아가 낙원의 이상인데도 불구하고 실제로 유토피아에 살면서 정말로 즐거워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유토피아는 자유를 약속하지만, 사실은 규칙과 엄격한 구분으로 가득 차 있다. 인간의 욕망, 탐욕, 시기심 등을 제한하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엄격함이 현실 속에서 실현되면 잔인함으로 둔갑한다. 공산주의와 파시즘은 유토피아적 이상의 잔인함을 극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런 역사적 경험 때문에 많은 철학자들이 유토피아를 비판했다. 그러나 최근에 이루어지고 있는 연구들은 유토피아의 이상을 되살리려 하고 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유토피아 그 자체가 아니라 유토피아에 도달하려는 인간의 노력이다.

(http://www.nytimes.com/library/arts/020500utopia-library.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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