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민에게 다가서는 법원

  • 입력 2000년 2월 1일 19시 21분


사법부가 변화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는가. 서울지방법원은 그저께 ‘새 천년을 시민과 함께’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시민과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이 행사에는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일반시민 등 200여명이 참석해 갖가지 불만사항과 제안을 쏟아냈다는 보도다. 대화의 내용은 차치하고라도 법원이 ‘사법 사상 최초로’ 이런 행사를 개최했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지금까지 사법부는 일반 국민으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진 존재였다. 법 이론과 법률용어 재판절차 등이 일반 국민에게 생소하고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법부 스스로 군림하는 자세를 견지해 오지 않았나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법치국가에서 사법부의 권위는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 못지않게 대단히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그 권위는 사법부 스스로 위압적 자세를 취하는 데서 나오는 게 아니다. 그것은 국민이 진정으로 ‘국민의 사법부’라고 느낄 때 자연스럽게 우러나온다고 믿는다. 그런 점에서 이번 시민과의 대화는 ‘국민의 사법부’ 상을 세우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리라고 확신한다.

올해로 우리나라에 근대 사법제도가 도입된 지 105주년이 됐다. 100주년이었던 95년 대법원이 서울 서초동 시대를 열 때 많은 기대를 걸었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 우리는 봉사하는 사법부, 신뢰받는 사법부, 공정한 사법부가 되기를 기원했다. 그 후 대법원은 나름대로 상당한 노력을 해온 것도 사실이지만 국민의 눈에는 역시 미흡했다. 때로는 지상 16층의 웅장한 새 대법원 청사가 더욱 위압적인 존재로 비치기도 했다.

최근 들어 국가의 행정작용을 포함한 모든 사회적 기능을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경향이 있다. 사법부의 재판업무 역시 여기에서 예외가 아니다. 사법부는 이미 우리 귀에 익은 이른바 ‘사법 서비스’라는 관점으로 발상을 크게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 국민적 요구라고 할 수 있다. 그러자면 우선 국민에게 바짝 다가서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국민의 소리’를 항상 경청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국민에게 다가서기 위한 사법부의 과제는 수없이 많다. 어려운 법률용어 바꾸기, 판결문 쉽게 쓰기, 변호사 없이 재판하는 소송관계자들을 효율적으로 돕는 것에서 시작해 정의를 적극적으로 실현하려는 자세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혁명적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서울지방법원이 그 첫 단계로 시도한 ‘시민과의 대화’가 전국 각급 법원으로 확산되기를 바란다. 이는 사법부의 개혁방향을 모색하는 데 필요할 뿐만 아니라 사법부에 대한 막연한 불신을 해소하는 데도 큰 도움을 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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