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득헌의 스포츠세상]빈스 롬바디 정신

  • 입력 2000년 1월 31일 20시 01분


슈퍼볼이 올해도 ‘화제’가 됐다. ‘화제’라는 말을 꺼낸 것은 슈퍼볼이 우리에게는 미국의 축제쯤으로 여겨졌으리라는 생각에서다. 예전에 미식축구 기사도 다뤘던 필자도 미식축구를 현장에서 본 것은 국내 대학팀간의 경기가 고작이다. 또 김치볼 애플볼 같은 국내대회는 예나 지금이나 동호인 수준이다. 그러니 슈퍼볼을 중계한 나라가 182개국, 시청자는 10억명, 30초당 텔레비전 광고료는 220만달러라는 것들이 경기 이상의 얘깃거리가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슈퍼볼 때마다 어김없이 되새겨지는 게 있다. 그것은 빈스 롬바디에서 비롯된다. 우선은 그의 업적과 철학이다. 그는 1959년 46세의 나이로 그린베이 패커스 감독을 맡아 전년도 1승10패1무의 팀을 7승5패의 팀으로 탈바꿈시켰고 1967년까지 팀을 다섯 번이나 프로미식축구리그(NFL)챔피언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1967년 창설된 슈퍼볼 첫 대회와 이듬해 대회에서도 우승을 일궈냈다. 그는 패커스에서의 98승30패4무를 포함해 통산 105승35패6무로 0.740이란 전무후무의 승률을 기록했다.

그의 대기록은 “무너지는가가 아니라 일어서는가가 문제이다” “댄스는 접촉스포츠이지만 미식축구는 충돌스포츠이다” “열정이 없다면 도태될 것이다”라며 선수들을 다그친 원칙주의에서 나온 것이다. 선수들은 “그는 공정했지만 선수 모두를 초주검으로 만들었다”라고도 했다. 그렇지만 미국인들은 그의 엄격한 자세를 기렸다. “승리는 모든 게 아니라 단지 하나일 뿐이다”는 스포츠 금언이 그의 말로 인용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실상 그는 “승리보다는 승리를 위한 노력이 모든 것이다”라고 말했다. 시사점이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는 슈퍼볼 우승트로피를 빈스 롬바디 트로피로 명명한 미국의 문화이다. 1970년 그가 암으로 죽자 NFL은 1971년 슈퍼볼부터 우승트로피 명칭을 그렇게 바꾸었다. 그의 정신과 자세를 영원히 살리자는 뜻이었다. 영예의 상징으로 이어지고 있는 그 트로피는 부러움과 답답함을 함께 안겨준다. ‘사람 존중’에 대한 시각차 같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도 이영민타격상 등 스포츠인사의 이름과 아호가 붙은 상이나 대회가 있기는 하지만 미국에 비할 바는 아니다. 대한체육회 창립 이후 80년 역사의 스포츠계는 물론 프로스포츠계도 ‘스포츠인 자리 찾기’의 길을 스스로 모색해야 할 것이다. 박신자 이에리사 장창선 선동렬 김응룡 차범근 등의 이름이 걸린 트로피나 상은 얼마나 친근하게 느껴지겠는가.

윤득헌<논설위원>dh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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