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나는 세상]장애형제의 '유권자심판운동' 참여

  • 입력 2000년 1월 28일 18시 25분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고 싶었다. 비록 자신들의 ‘육체적 다리’는 온전치 못하지만 반세기 넘게 바뀌지 않던 낡은 정치를 시민의 힘으로 바꿔가는 길목에서 ‘작은 다리’ 역할을 하고 싶었다.

그들은 절룩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한국 정치개혁의 한 복판에 섰다. 작은 일이지만 이 일이야 말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일이라는 신념에서였다.

낙천낙선운동을 벌이는 총선시민연대에서 자원봉사활동중인 김병태(金丙泰·35) 형태(炯泰·29)씨 형제. 3남1녀중 장남과 막내인 형제는 다리를 온전히 사용하지 못한다.

형인 병태씨는 두살 때 소아마비를 앓은 뒤 그 후유증으로 3급장애인이 됐다. 동생인 형태씨는 세살 때 횡단보도를 건너다 교통사고를 당했고 공교롭게 형과 마찬가지로 다리를 다쳤다. 다행히 형보다는 상태가 좋은 5급장애인이다.

병태씨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83년 동기생들과 마찬가지로 은행과 회사 등 10여곳에 취업원서를 들고 돌아다녔다. 누구보다 열심히 할 자신이 있었지만 그는 끝내 선입견의 벽을 넘지 못했다. 동생 형태씨도 대학 경영학과를 나왔지만 형과 마찬가지로 취업에 실패했다.

병태씨는 86년부터 장애인문제연구회 ‘울림터’를 만들어 장애인인권운동을 시작했다. 89년 장애인고용촉진법 제정운동을 벌여 이 법의 시행을 앞당기기도 했다. 형의 영향을 받은 동생도 장애인 복지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형제는 지난해부터 한국장애인연맹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형제가 총선연대에 자원봉사활동을 시작한 것은 18일. 총선연대 소속단체인 장애인연맹이 두사람에게 봉사활동을 권했고 형제는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우리 힘으로 낡은 정치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니 묘하게 가슴부터 뛰더군요.”

형태씨의 소감이다. 병태씨는 총선연대 산하 각 지역조직의 정비를 맡았고 상대적으로 움직임이 자유로운 형태씨는 운영팀에 합류해 방문객들과의 상담을 맡게 됐다.

그리고 두 사람은 사무실에 합류한 뒤 여느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한시도 쉴틈 없이 열심히 활동했다. 다리를 절룩거린다는 사실 외에는 모든 것이 같았다. 오전 9시반 출근, 오후 11시 퇴근의 빡빡한 일정도 이들에게는 오히려 즐거움이었다.

“한 사회의 인권 복지 수준을 가늠하려면 그 사회가 장애인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면 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사회는 아직 인권복지 후진국이지요. 낡은 정치를 바꾸는 이 시작이야말로 인권과 복지를 확장하는 데 가장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병태씨가 말하는 ‘장애인 인권’과 ‘낙천낙선운동’과의 상관관계다.

28일 오전 70대 노신사가 형태씨와 상담한 뒤 “수고한다. 식사라도 하라”며 꼬깃꼬깃한 1만원권 지폐를 쥐어줬다. 지폐를 두 손에 꼭 쥐고 성금접수창구로 절룩거리며 걸어가는 형태씨의 환한 얼굴에 ‘이런 시민의 힘이 모든 성원(成員)에게 기회를 부여하는 복지사회를 만들어 낼 것’이라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이완배기자>roryrer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