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춘향뎐/판소리와 영상 기막힌 어울림

  • 입력 2000년 1월 20일 19시 38분


왜 춘향전일까, 어떤 춘향전일까?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 꼬리를 무는 질문에 마침내 해답이 나왔다. 섣부른 판단일지 몰라도 이제 한국 영화계는 또하나의 대표작을 얻게 된 것 같다.

‘춘향뎐’은 판소리의 리듬과 영상의 흐름을 결합시키는 파격적인 실험을 감당해냈다. 영화가 시각에 중점을 둔 예술이라는 상식이 여지없이 무너질 정도.

영화는 현재 시점에서 명창 조상현이 춘향전 완창 무대를 갖는 가운데 판소리 장단에 맞춰 열녀 춘향의 파란만장한 러브스토리가 펼쳐지는 ‘극중 극’의 형태로 전개된다. ‘춘향뎐’은 고전 춘향전을 소재로 한 극영화로는 14번째 작품. 모든 사람에게 익숙하고 진부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이전 작품들과는 차원을 달리 한다.

임감독은 잘 알려진 고전의 틀에 현대적 해석을 가미했다. 몽룡(조승우 분)과 춘향(이효정)의 러브신이 ‘니가 무엇을 먹을래. 시금털털 개살구, 작은 이도령 서는듸 먹으랴느냐’는 ‘사랑가’의 한 대목과 겹쳐지며 사랑의 농도가 훨씬 짙어졌다.

신관 사또 변학도도 추상같은 어사의 기세에 눌리기는 하지만, 무릎꿇은 채 절절 매는 비굴함을 보이지는 않는다.

이 작품과 이전 춘향전의 가장 큰 차이는 역시 ‘소리’다. 좋은 음향효과가 귀를 즐겁게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춘향뎐’은 판소리 자체를 영상 속에서 살려냈다. 93년 서울관객 기준 103만명으로 역대 한국영화 흥행 2위를 기록한 ‘서편제’가 판소리의 ‘맛보기’였다면 이번 작품은 ‘진국’에 해당한다. 어쩌면 이 작품의 주인공은 춘향이나 이도령이 아니라 판소리 자체일지 모른다.

명창 조상현의 목을 통해 울려나오는 춘향가의 구구절절한 소리는 영상과 어우러지면서 관객의 가슴 속으로 파고 든다. 이팔청춘 몽룡과 춘향이 한 바탕 사랑을 나누는 장면에서 두근두근 수줍게 고개를 숙이던 소리가 어사출두 대목에서는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상영시간 2시간14분 중 55분간 조명창의 판소리가 나온다. 국립극장장 김명곤이 4시간35분에 이르는 원안 ‘조상현 창본 춘향가’ 중 사랑가 옥중가 십장가 등을 중심으로 각색했다.

사계절이 담긴 촬영감독 정일성의 화면도 빼어나다. 하지만 판소리를 접할 기회가 적고, 영화의 재미에 익숙한 젊은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 지는 미지수다. 등급은 24일 경 결정된다. 29일 개봉.

<김갑식기자> 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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