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서영훈씨가 '이름' 지키려면

  • 입력 2000년 1월 17일 20시 06분


새천년 민주당 대표에 서영훈(徐英勳)제2건국위원회상임위원장이 내정된 데는 서씨가 지니고 있는 두 가지 특성이 현 권력측 요구에 부합됐을 것이다. 그동안 여러 시민운동에 참여해온 서씨의 개혁적 이미지와 이른바 대권과는 무관하다는 서씨의 ‘탈(脫) 권력적 성향’이 그것이다. 권력측은 개혁적 이미지를 신당 이미지에 접합시키는 한편 총선 이후 권력구조와는 관계없는 ‘관리형 대표’로서 4월 총선을 치르기에는 서씨가 적격이라는 판단을 했음직하다.

서씨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뜻을 받들되 대표로서 내 의견도 말씀드리겠다. 특히 국민의 요구와 주장을 당의 의사결정에 반영하는 데 힘쓰겠다”며 정치 진입의 소신을 밝혔다. 우리는 서씨가 소신껏 여당의 체질개선과 정치개혁에 이바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기대보다는 우려가 큰 것이 솔직한 우리의 심정이다. 우리 정치사를 돌아보면 신망 높던 재야 인사나 학자 등 ‘깨끗한 인물들’이 권력의 부름에 ‘개혁적 의지’로 응했다가 현실정치의 벽을 넘지 못하고 오히려 ‘이름’마저 훼손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노회한 프로 정치인들에 업혀 ‘1회용 얼굴 마담’으로 이용되기만 한 예가 적지 않다.

서씨가 이런 ‘불행한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집권여당 대표로서 적어도 다음 두 가지 사항을 준수해야 할 것이다.

첫째, 4월 총선을 공명선거로 치러야 한다. 서씨는 기자회견에서 “승리보다 공명선거가 우선과제”라고 말했지만 여야(與野) 가릴 것 없이 승리를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분위기에서 ‘관리형 대표’의 한계를 얼마만큼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서씨 자신이 공언한 대로 ‘정치문화를 개혁하기 위해’ 뒤늦게 정치에 뛰어들었다면 이번 총선만큼은 반드시 공명선거로 한다는 확고한 실천의지를 보여야 한다. 그러잖아도 한나라당은 제2건국위상임위원장인 서씨가 여당 대표가 됨으로써 제2건국위가 여당의 총선 전위조직으로 이용되지 않을까 의심하고 있다.

둘째, 당내 민주화의 기틀을 세우는 일이다. 과거 우리 정당들이 선거 때면 급조됐다가 선거 후면 없어지거나 간판을 바꿔 다는 행태를 보여온 것은 이들 정당들이 1인 보스의 사유물처럼 운영되었기 때문이다. 당내에 뿌리가 거의 없다시피한 서씨가 과연 당내 민주화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이 많지만 이를 해내지 못하면 당도 죽고 당대표도 죽는다는 사실을 서씨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서씨의 ‘이름’이 훼손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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