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야합'의 게리맨더링

  • 입력 2000년 1월 16일 20시 03분


여야가 15일 합의한 선거법개정안은 한마디로 ‘체면도 염치도 살피지 않은 야합의 산물’이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이다. 새 세기 정치개혁의 핵심인 선거법이 이처럼 여야간에 ‘비양심적인’ 거래로 처리된다면 그 선거법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그리고 주권자인 국민은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여야는 국회의원 정수를 지금처럼 299석으로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작년 정치개혁협상을 시작할 때 의원 정수를 30%는 줄여야 한다던 여권의 주장을 생각하면, 그러다 여야 모두 의원 정수를 270명선으로 하는 데는 이의가 없는 것처럼 떠들었을 때를 생각하면 실소(失笑)를 금치 못한다.

선거구 인구 상하한선을 현행대로 7만5000명에서 30만명으로 유지키로 한 것도 내부적으로 들여다보면 게리맨더링(당선을 유리하게 하기 위해 자의로 선거구를 가르는 것)의 극치다. 여야가 자기 몫을 챙기는 데만 급급해 표의 등가성이나 대의기능 문제는 아예 논외가 됐다. 합구(合區)나 분구(分區)에 따른 여야 몇사람의 불이익을 막기 위해 인구 상하한선이 기준도 없이 오락가락했다. 그러다 그 인구도 선거법에 규정된 ‘최근’ 것이 아닌, ‘작년 9월말’을 기준으로 삼았다. 그동안의 인구변동을 무시하고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잔꾀’를 낸 것이다. 그러다보니 지역구가 253개에서 5개가 늘어난 258개가 됐고 비례대표는 현재 46석에서 41석으로 줄어드는 어처구니없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새 세기 지식 정보사회에 부응하기 위해 그리고 다양한 사회기능을 충실히 대변하기 위해 가급적 비례대표수를 늘려야 한다던 여당측의 주장은 간 곳이 없다.

이른바 중진의원들을 당선시키기 위해 중복입후보 허용과 석패율(惜敗率)제도를 도입한 것도 사리에 맞지 않는다. 본란이 이미 지적했듯이 우리에게는 전혀 생소한 석패율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일부 인사를 당선시키기 위한 정치적 ‘가식’이요 ‘특혜’라는 생각이다. 아무리 유능한 인사라 해도 지역구에서 당선되지 못하면 일단 국민의 선택을 받는 데 실패했다고 보는 것이 우리의 정치풍토상 상식적인 판단일 것이다.

이처럼 여야의 담합과 거래에 의한 선거법으로는 국민의 전반적인 정치적 불신은 물론 자칫 ‘정치적 저항’까지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정치권은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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