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치 개혁' 다 어디로 갔나

  • 입력 2000년 1월 16일 20시 03분


정치 불신이 극에 달하고, 낙선운동이 불법이라는데도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는 이유를 새삼 확인하게 된다.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무려 13개월 넘게 뭉그적거리다 내놓은 ‘작품’에서 우리는 절망감마저 느끼게 된다. 이 땅의 정치인들이 과연 자기개혁을 말할 자격이나 있는지 되묻고 싶다. 진지하게 개혁방도를 논의한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고, 그들 스스로 약속하고 공언한 내용까지 송두리째 뒤엎고 팽개쳐 버렸다.

우선 선거사범 공소시효를 종전의 6개월에서 4개월로 단축한 것은 개악(改惡)의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수사기관이나 선관위의 조사를 하루라도 빨리 모면하고 싶다는 집단이기주의 라고 밖에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게다가 ‘선거 기사 심의위’라는 것을 만들어 정정보도와 사과문을 해당 언론사에 요청할 수 있게 한 것도 빗나간 발상이다. 이것은 이미 전문가들로부터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언론중재나 사법적 구제절차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민주국가에서는 유례가 없는 언론 통제적 악법조항을 관철한 배경을 이해할 수 없다.

반면 정치의 투명성 확보차원에서 정치자금을 주고 받을 때 수표를 쓰게 하고 선관위가 선거비 실사권한을 갖게 하는 등의 방안은 온데간데없다. ‘깨끗한 정치’는 그저 구두선(口頭禪)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만 같다. 그리고 시민단체의 선거운동을 금지한 선거법 87조에 대한 들끓는 개정 여론과 국민적 관심에도 불구하고, 끝내 거들떠보지도 않고 넘어갔다. 정치인 집단 ‘끼리’의 이해관계에 따라 그들에게 좋으면 법이 되고, 그들에게 껄끄러우면 불의(不義)라는 이름으로 팽개친다는 말인가.

인사청문회제도를 헌정사상 처음으로 도입,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감사원장 그리고 대법관 및 헌재재판관 중앙선관위원 등 후보를 청문회에 부른다는 것은 그 나름의 의의가 있다지만, 정작 관심사인 국정원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등 이른바 권력핵심 빅4에 대한 청문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청문회 도입의 취지가 진짜로 힘있는 자리, 정치적 중립을 잃을 경우 국가이익과 국정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지위의 ‘후보’를 스크린하는데 있는데도 말이다.

다가오는 4월선거에만 정신이 팔린 여야는 중요한 개혁입법의 한 항목인 반부패기본법을 외면한채 15대국회를 닫으려 하고 있다. 반부패특위 윤형섭위원장은 “4년째 계류중인 그 법이 표류하고 있는 이유는 그 법의 표적이 될 사람들이 입법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겉으로는 정치개혁을 외치면서 뒤로는 당리당략과 생존에 급급하는 현역 정치인들, 그들은 이렇게도 자정(自淨)능력이 없는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