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경제 이래서 강하다]종업원 주식소유제

  • 입력 2000년 1월 12일 20시 03분


“종업원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사고하고 행동하기를 바란다면 그들을 먼저 주인으로 만들어라.”

최근 10년간 미국 기업들에 유행처럼 퍼지고 있는 명제다. 미국에서 종업원들의 소유와 경영 참여는 노동조합의 요구에 굴복해서가 아니라 종업원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사용주들의 인적자원 관리(Human resource management) 차원에서 이뤄져왔다.

대표적인 제도가 종업원주식보유제(ESOP). 한국의 종업원지주제와 용어는 비슷하지만 내용은 다르다. ESOP는 회사에서 설립한 펀드에 종업원 개인별 계좌가 개설되고 종업원의 급여 중 일정액과 회사의 기여금으로 회사 주식을 매입해 그 계좌에 예치하는 제도다. 종업원은 회사 퇴직 때 주식을 당시 시장가격으로 회사에만 되팔 수 있다. 다만 종업원들은 펀드 매니저를 통해 주식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함으로써 경영에 간접적으로 간여할 수 있다.

이 제도는 노사 모두에 이익을 준다. 고용주로서는 회사에 대한 종업원의 이해와 참여도를 높일 수 있고, 종업원들로서는 주가 상승으로 나타날 경영의 과실을 나눠가질 수 있고 노후대책도 된다. 1975년에 정부의 세제 혜택을 받으며 도입돼 1990년대 들어 크게 확산됐다. 미 전국 종업원주식소유센터(NCEO)에 따르면 이 제도에 따라 주식을 보유한 종업원이 1990년 8000개 회사의 500만명, 1995년 1만개 회사의 830만명에서 1998년에는 1만1000개 회사의 850만명으로 늘었다.

ESOP가 인기를 끄는 것은 이 플랜에 가입한 회사들의 경영성과가 훨씬 좋기 때문. NCEO의 1998년 조사 결과 상장회사 가운데 ESOP에 따른 종업원들의 주식이 전체 회사주식의 20%를 넘은 회사는 1983년부터 1997년까지 한 곳도 도산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전에 실시된 여러차례의 조사에서도 ESOP를 도입한 회사의 판매신장률이나 고용창출효과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고 NCEO측은 밝혔다.

또 하나 중요한 기능은 ESOP가 증시활황을 촉발시킨 한 요인이 됐고 이에 따라 기업들의 자금조달이 더 쉬워졌다는 점이다. 1998년 현재 ESOP를 통해 종업원들이 보유한 주식시가 총액이 4000억달러에 이르렀다. 일종의 선(善)순환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종업원들의 은퇴 연금제도로 401(K)플랜이 인기를 끌면서 ESOP를 맹렬히 추격하고 있다. 401(K)플랜은 ESOP와 비슷하지만 펀드 매니저를 통해 자기 회사 주식뿐만 아니라 다른 회사 주식도 살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NCED에 따르면 1998년 현재 3000개 회사가 401(k)플랜을 채택, 700만명의 종업원들이 이 플랜을 통해 2500억달러의 주식에 투자해놓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다 한국의 종업원 지주제와 유사한 스톡옵션(주식할당제)도 최근 창업회사와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보편화돼 종업원들의 주식보유량이 엄청난 규모로 불어나고 있다.

NECD의 에드 카베리 공보국장은 “가장 소극적으로 평가해도 종업원들이 이제 미국의 전체 회사주식의 8.3%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이에 따라 종업원들의 영향력도 커지고 있지만 반대로 경영이나 작업에서 보다 책임있는 자세를 요구받고 있다”고 말했다.

▼UA의 성공사례▼

미국에서 종업원주식소유제(ESOP) 덕분에 회사가 위기에서 탈출한 사례로는 단연 유나이티드 에어라인(UA)이 꼽힌다. 세계 최대 항공사인 UA는 1991년 걸프전의 여파로 연료가격이 치솟은데다 군소 항공사들의 저가공세에 승객들을 빼앗겨 3억3200만달러의 손실을 냈다. 이듬해에도 사정은 더욱 악화돼 사상 최대인 9억5700만달러의 적자를 내면서 회생 불능의 위기에 빠졌다.

그러자 1994년7월 항공사 조종사협회와 국제정비사협회에 속한 종업원 5만5000여명이 5년간 지급받을 급여의 일정부분을 포기하는 대가로 UA주식 53%를 매입했다. 이 주식들은 ESOP에 따라 설립한 펀드에 예치됐고 종업원들은 지배주주로서의 의결권을 공동행사했다.

이어 종업원들은 노동비용을 연간 5억달러씩 줄여가면서 회사 구하기에 나섰다. 그 결과 UA는 1994년부터 흑자로 돌아서 1995년에는 1억달러의 순익을 내며 회사경영을 완전정상화했고 연간 총연장 1112억마일의 운항실적을 가진 세계 최대 항공사로서 우뚝 섰다.

비슷한 사례로는 IBM의 뉴욕시 브루클린 공장을 들 수 있다. 1993년 구조조정 과정에서 IBM이 이 공장을 매각하려 하자 집단해고 위기에 놓인 종업원 200명이 IBM으로부터 이 공장을 매입, 애드밴스트 테크놀러지 솔루션(ATS)이라는 새 회사를 차렸다. 종업원들은 급여와 각종 혜택을 포기한 대가로 50%의 지분을 확보, ESOP에 주식을 묶어놓음으로써 종업원 전체가 지배주주가 됐다. 그리고 2년 만에 직원을 60명이나 늘릴 만큼 회사경영을 반전시켰다.

<워싱턴〓홍은택특파원> euntack@donga.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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