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프로보노'운동

  • 입력 2000년 1월 9일 19시 54분


미국에는 프로보노(Pro Bono) 운동이라는 게 있다. 프로보노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제공되는 무료봉사’를 말한다. 이 운동은 주로 법대 학생들과 변호사단체, 대형 법률회사(로펌)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소외계층에 대한 무료 법률서비스를 가리킨다. 미국엔 변호사가 100만명이 넘는다. 그런만큼 저질 변호사도 많아 미국사회에서 변호사에 대한 평가는 좋은 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변호사들이 사회적 책임의 한몫을 담당하려는 노력을 보여주는 예가 프로보노 운동이다.

▷미국의 법대생들은 주택난 재소자 이민자 등 각종 사회문제에 대한 임상경험을 통해 살아 있는 법을 체득한다. 의학도나 자연과학도들이 ‘클리닉’과 ‘실험실’에서 공공봉사 정신을 키워나가는 것과 같은 취지이다. 졸업 후 로펌에 들어간 변호사들은 시민단체 등에 공익변호사로 진출한 동창생들을 위해 일종의 ‘십일조’를 거둬 지원하기도 한다. 미국변호사협회(ABA)는 변호사들이 소외계층이나 시민단체 지역사회 정부 및 교육기관 등에 매년 50시간씩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독려한다. 또한 이들이 펼치는 법률 제정과 개폐운동은 괄목할만하다.

▷미미하지만 우리나라에도 무료 법률봉사활동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최근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신참 변호사들이 하나둘씩 시민사회운동에 뛰어드는 사례가 늘고 있어 고무적이다. 이미 대표적인 시민운동가로 자리잡은 박원순(참여연대 사무처장) 이석연변호사(경실련 사무총장) 외에도 작년에 김기덕(금속노련), 올해 여영학(환경운동연합) 김성진씨(금속노련) 등 신참들이 상근(常勤)으로 들어갔다. 진보적인 이들의 활동을 곱지 않게 보는 시각도 법조계 안팎에 없지 않지만 뜨거운 열정만은 알아줘야 한다.

▷이들은 대부분 월 100만원도 안되는 월급으로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사법시험에 합격만 하면 높은 수입과 사회적 지위가 보장되는 ‘특권’을 버린 용기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목표는 오직 밝은 사회를 만드는 데 있다. 박원순변호사는 “공익변호사 동참이 몇년 내에 큰 흐름을 형성하게 될 것”이라고 낙관한다. 이들은 변호사의 직역(職域) 확대는 물론 법치국가를 앞당기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이 틀림없다.

육정수<논설위원>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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