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린 옐친시대]러 정치안정속 시장개혁 가속 전망

  • 입력 2000년 1월 2일 23시 04분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의 VIP 전용 출입문인 스파스카야탑. 경험많은 기자들은 러시아에 정변이 있을 때마다 이곳의 경계상태로 사태의 심각성을 짐작한다. 보리스 옐친이 갑작스럽게 사임한 다음날인 1일. 달랑 2명의 경비병이 소총도 없이 한가롭게 서 있었다.

바로 옆의 붉은 광장에는 수천명의 시민과 관광객들이 추운 날씨에도 눈을 맞으며 기념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석유가스대 3학년생인 미하일 스미르노프는 “옐친이 가장 큰 새해 선물을 국민에게 주었다”며 기뻐했다. 옐친 사임 직후 에호 모스크비 라디오 방송이 671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긴급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8%가 옐친의 사임을 환영한다고 답했다.

8년여 동안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대통령이 6개월의 임기를 남기고 돌연 조기 사임했지만 있을 법한 정국혼란이나 권력공백현상의 기미는 러시아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역설적이지만 옐친의 조기 퇴진으로 앞으로의 정치 일정과 권력의 향배가 오히려 뚜렷해졌다. 러시아 정치분석가들은 옐친이 사임한 가장 큰 이유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권한대행에게 권력을 순조롭게 물려주기 위해서라고 해석하고 있다. 현재 50%가 넘는 지지율로 인기절정인 푸틴이 하루라도 빨리 선거를 치러 차기 대통령이 되는 것이 옐친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옐친 정권에서 제1부총리와 대통령행정실장을 지내며 95년 옐친의 재선을 이끌어내었던 아나톨리 추바이스 국영 연합전력 사장은 “이제 푸틴의 경쟁자는 아무도 없다”고 단언했다. 거리에서 만난 모스크바시민들도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될 것 같으냐는 물음에 한결같이 ‘푸틴’이라고 대답했다.

러시아는 짧은 민주화 전통에도 불구하고 91년부터 2번의 대선과 3번의 총선을 치르면서 민주절차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반면 쿠데타 등 돌발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러시아군은 체첸전쟁과 올해 국방예산 증액을 계기로 푸틴의 가장 중요한 지지기반이 됐다. 공산당 등 좌파도 유혈충돌로 끝난 93년 10월 사태 후 무력에 의한 정권 탈환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옐친 사임 소식이 나오자 러시아 주식시장의 RTS지수는 18%나 뛰었다. 옐친의 사임과 푸틴의 대통령권한대행 취임이 경제에 긍정적 소식임이 입증된 것이다. 미국 카네기재단 모스크바사무소 경제분석가인 안드레이 랴보프는 푸틴이 시장개혁을 계속하고 사회적 안정을 이룰 것이라는 믿음을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푸틴은 자신도 국영기업 민영화와 사유재산 보호 등 시장개혁정책을 유지할 것이라고 다짐해왔다. 반면 일부 서방언론은 구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인 푸틴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어 시장개혁과 민주화를 후퇴시킬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푸틴의 이력을 살펴보면 그가 이러한 엇갈리는 평가를 받는 이유를 알 수 있다. 푸틴은 15년 동안 해외공작을 담당하는 KGB 제1국에서 근무했다. 대권 경쟁자인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전 총리가 KGB에서 중동전문가로 활약하며 반서방적인 태도가 몸에 밴데 반해 푸틴은 독일에서 오랫동안 근무해 서방에 대한 이해가 깊다.

푸틴은 94년 잠시 KGB를 떠나 고향인 레닌그라드(지금의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부시장으로 일하며 외자유치업무를 담당했다. “정보기관 출신이어서 경제를 모른다”고 알려진 것과는 달리 푸틴은 일치감치 시장경제에 눈을 뜬 것이다.

푸틴은 최근 러시아정부의 인터넷 홈페이지(www.gov.ru)에 ‘새천년의 시작을 맞은 러시아’라는 기고문을 올렸다. 푸틴은 “러시아는 역사적으로 자유주의적인 가치가 발달하지 못했고 개인주의보다는 ‘집단’을 먼저 생각하는 전통이 깊어 결코 미국이나 영국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서구민주주의와 자유경제를 이해하면서도 러시아적인 가치를 양보하지 않는 것이 푸틴 정부의 기본철학이 될 것임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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