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 새아침 에세이]류시화/따뜻한 가슴으로 살리라

  • 입력 1999년 12월 31일 20시 48분


1

그 동안 내가 먹은 동물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우직한 소와 돼지를 위해

뾰족 부리를 가진 닭을 위해

인도와 네팔을 여행하며

배 고프다는 이유로 잡아먹은

순박한 눈의 검은 염소를 위해

그동안 내가 마구 더럽힌 물을 위해

내 발 아래 파헤쳐진

어머니 대지를 위해

기도합니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차갑게 등 돌린 사람들을 위해

내가 묵묵히 지켜보기만 한

가난하고 불행한 이들을 위해

나 자신도 모르게 헛되이 써 버린

그 많은 시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제부터 그렇게 하지 않기 위해.

내게 겨울마다 양식이 되어 준

고구마에게

여름의 주먹 쥔 감자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매순간 가슴을 채워 준

신선한 공기에게

내영혼이보다 순수해지도록도와 준

처녀 채소들에게

얼굴을 비춰 주는 무심한 개울물에게

언제나 웃는 꽃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추운 겨울을 지내고도

순백으로 피어나는 목련에게

내 안의 단순성을 일깨워 주는

첫 민들레에게.

나 또한 그렇게 살기 위해

2

오늘 나는 깨닫는다. 내가 지나온 모든 길이 내게 하나의 과정이었음을. 내게 필요했기 때문에 그 많은 일들이 일어났음을. 한때 나는 어리석었고,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으며, 내가 받은 상처 때문에 괴로워하기도 했다.

나는 실패를 거듭했으며, 어떤 때는 너무 오래 망설이다가 바람의 방향을 잘못 탄 거미처럼 엉뚱한 쪽을 선택하기도 했다.

이제 나는 안다. 그 모든 것이 지금 이 순간, 이 자리로 나를 데려오기 위한 필연적인 단계였음을.

마르타 스목의 시처럼, 내가 지나온 그 길들은 내게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 상처와 두려움이 없었다면 나는 이처럼 성장하지도 못했고,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도 갖지 못했으리라.

지구는 하나의 교실이다. 우리는 이 교실에서 배움을 얻기 위해 삶이라는 긴 여행을 떠나왔다. 각자 자신에게 필요한 깨달음을 얻고자 이 세상에 육체를 갖고 태어난 것이다.

체리 스코트는 ‘인생의 11가지 규칙’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당신에게는 육체가 주어질 것이다.

당신은 경험을 통해 배울 것이다.

실패는 없다. 오직 배움만이 있을 뿐이다.

충분히 배우지 못하면, 당신에게는 그 경험이 반복될 것이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

‘이곳’보다 더 나은 ‘그곳’은 없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당신을 비추는 거울이다.

어떤 삶을 만들 것인가는 전적으로 당신 자신에게 달려 있다.

당신에게 필요한 해답은 모두 당신 안에 있다.

그리고 태어나는 순간 당신은 이 모든 사실을 잊을 것이다.

영혼의 스승들은 한결같이 이 삶은 우리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에게 부족한 배움을 얻어 더 높은 영적인 단계로 올라가기 위해서 이 삶을 선택한 것이다.

나아가 부모 자식의 관계, 배우자의 관계까지도 미리 영혼의 상태에서 약속을 하고 이 세상에서 만난 것이라고 그들은 일깨운다. 심지어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까지도 영혼의 성장을 위해 우리가 스스로 선택한 관계라는 것이다.

내가 지금 다시 읽고 있는 말로 모건의 체험 소설 ‘무탄트’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호주 원주민 사회에 들어간 서양 여의사가 생일 파티에 대해 말하면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자 원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한다.

“왜 나이 먹는 것을 축하한다는 것인가? 축하란 무엇인가 특별한 일이 있을 때 하는 것인데, 나이를 먹는 게 무슨 특별한 일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나이를 먹는 데는 아무 노력도 들지 않는다. 나이는 우리가 그냥 저절로 먹는 것이다.”

그래서 여의사가, 그러면 당신들은 무엇을 축하하느냐고 묻자 그들은 대답한다.

“우리는 나아지는 것을 축하한다. 지난해보다 올해 더 훌륭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다면, 그걸 우리는 축하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인도 바라나시의 갠지스강가에 와 있다. 2000년 1월1일을 이곳에서 맞이하기 위해서다. 지난해에는 네팔 히말라야에서 새해 첫날을 맞았었다. 내 인생에서 어느새 또 한 해가 흘러간 것이다.

과연 나는 지난해보다 영적으로 더 성장했는가. 그때 다짐했듯이 내 정신은 땅 속의 고구마처럼 더 단단해졌는가.

나 자신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이 지구라는 교실에서 새로운 세기를 축하할 만큼 더 나은 인간으로 변화했는가.

대답은 희망적이다. 마음의 길을 걷는 사람들은 금세기가 인간 영혼이 진정한 자유와 조화를 추구하는 시대가 되리라 예감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눈을 바깥에서 안으로 돌려야만 한다.

남을 의식하는 거짓된 삶이 아니라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에 보다 가까워져야 한다. 누구의 말을 빌릴 필요도 없이, 머리가 아닌 가슴의 삶이어야 한다.

올 한해에도 나는 나 자신에게 보다 진실해지고, 내 삶을 받아들이고, 내게 일어나는 여러 일들로부터 더 많은 배움을 얻으리라.

더 단순하게 살고, 더 많이 웃고, 매 순간을 느끼리라.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하리라.

류시화<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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