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연정희 코트

  • 입력 1999년 12월 17일 19시 23분


사람들이 유행을 따르는 것은 사회의 주류(主流)에서 이탈되지 않으려는 심리 때문이다. 사람들은 요즘 가장 유행한다는 옷을 입고 유행어와 취미를 공유할 때 편안함을 느끼게 마련이다. 홀로 떨어져 있을 때 마음이 불안해지고 집단에 속해 있을 때 안도하는 것이 인간 본능인 탓이다. 더구나 유행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어느 사회에서나 ‘앞서가는 사람’들이 아닌가.

▽유행의 출발점은 어디일까. 유행은 자기 자신을 남과 차별화하려는 발상에서 시작된다. 장발과 청바지는 젊은이들이 기성세대와 자신을 구분하기 위해 만들어낸 저항문화의 산물이다. ‘노랑머리’는 같은 젊은이 사이에서도 뭔가 튀어 보이기 위해 생겨났다. 남과 달라지려는 목적으로 소수에 의해 창조된 스타일과 취향이 유행을 만들고, 다수가 그 뒤를 좇아 얼마 뒤에는 전체가 획일화되어 버리는 유행의 생성과정은 그래서 아이로니컬하기 그지없다.

▽유행 하나하나를 들여다 보면 논리적으로 해석되기 어려운 것들이 적지 않다. ‘도망자’ 신창원이 체포당시 입었던 요란한 색깔의 ‘쫄티’가 유행했던 점도 그렇다. 신창원이 일부에서 ‘의적’처럼 미화됐다고는 하지만 그가 입었던 옷이 인기를 끈 사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다. 요즘 옷로비 사건의 주역 연정희씨와 관련된 호피무늬 모피코트가 주부들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연정희 코트’라는 상품이름까지 생겼다고 하니 유행의 반열에 올려도 무방할 듯하다.

▽‘신창원 쫄티’에 비해 ‘연정희 코트’는 그래도 납득할 수 있는 대목이 있다. 우선 세간에 화제를 모았던 옷에 대한 호기심이다. ‘바로 이옷이구나’ 하는 주부들의 반응에는 권력층 사모님들에 대한 차가운 비웃음이 깔려 있음도 지나쳐서는 안된다. 하지만 유행이란 예술품을 볼 때처럼 자꾸 따지려고 들면 더욱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세기말 우리의 세태를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으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떨지….

〈홍찬식 논설위원〉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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