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재홍/잠자는 남북기본합의서

  • 입력 1999년 12월 12일 19시 47분


8년전 오늘 서울에서 열린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은 가슴 설레는 소식을 한반도 안팎에 전했다. ‘남북 군사당국자간 직통전화 설치 운영’(13조) ‘흩어진 가족 친척들의 서신거래와 상봉 방문, 자유의사에 의한 재결합’(18조) ‘끊어진 철도와 도로 연결’(19조) ‘국제무대에서 경제 문화 분야 공동진출’(21조) 이런 내용을 담은 남북기본합의서에 양측 총리가 서명한 것이다.

▽이 합의서는 7·4남북공동성명(72년)의 조국통일 3대원칙을 재확인했다. 7·4성명은 남북의 밀사(密使)가 만들었지만 기본합의서는 양측의 총리가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마주앉아 논의한 끝에 타결지은 문서다. 그런데도 7·4성명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북한이 이를 토대로 만든 기본합의서에 대해서 계속 외면하고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합의서는 그 이름대로 화해와 교류 협력에 관한 기본법이며 이를 바탕으로 9개 부속합의서가 거의 완벽한 실천세칙까지 갖췄다.

▽현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은 민간의 교류협력이 두터워진 뒤 그 바탕 위에서 당국간 회담을 추진한다는 수순을 밟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경제교류가 활발해도 정치군사적인 면에서 관계개선이 없으면 진정한 평화공존은 있을 수 없다. 금강산 관광객이 가고 비료가 운송되는 가운데 터진 연평해전사태가 그 한 예다. 대만 기업인들이 대륙 중국에 대규모 투자를 했지만 양안(兩岸)군사충돌 위기가 수시로 고조되는 것도 그렇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올해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지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요소를 함께 갖고 있다고 말했다. 간첩선을 침투시키는 것은 부정적이지만 민간 교류협력에 응하는 것은 긍정적이라는 얘기다. 이는 과거의 정부가 비난해 온 ‘북한의 이중성(二重性)’에 대한 매우 의미있는 인식전환이다. 그러나 포용정책도 기본합의서의 극히 일부분을 실천하는데 불과하다. 그 실천을 넓혀가는 것이 한반도 평화와 공영(共榮)의 길이다.

〈김재홍 논설위원〉nieman9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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