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水落石出(수락석출)

  • 입력 1999년 11월 28일 18시 51분


蘇東坡(소동파)의 이름은 軾(식), 字는 子瞻(자첨)이며 號는 東坡居士(동파거사)다. 東坡는 그의 號인 셈이다. 송나라 때 명문장가 蘇洵(소순)의 큰 아들로 태어나 역시 文才를 떨쳐 아버지, 동생 蘇轍(소철)과 함께 唐宋八大家(당송팔대가) 8자리 중 3자리나 차지했다.

당시 神宗(신종)은 王安石(왕안석)의 變法(변법)으로 일대 개혁정치를 단행했는데 여기에 반기를 든 사람이 蘇東坡였다. 王安石과 격렬한 논쟁을 벌였지만 神宗의 寵愛(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던 그와 대적하기에는 力不足(역부족)이었다. 결국 좌천되어 간 곳이 현재 湖北省(호북성) 黃州(황주)의 東坡(동파)라는 곳이었다.

그는 천성이 자연을 즐겼던지라 틈만 나면 주위의 명승을 찾아 유람했다. 한번은 赤壁(적벽)을 찾았다. 유명한 赤壁賦(적벽부)가 여기서 나왔다. 본디 赤壁이라면 삼국시대 孫權(손권)의 吳(오)와 劉備(유비)의 蜀(촉)이 연합해 曹操(조조)의 백만대군을 격파했던 곳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蘇東坡가 찾은 赤壁은 삼국시대 격전지로서의 赤壁이 아니라 黃州의 赤壁이었다. 물론 그가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 다만 그곳도 赤壁이었으므로 잠시 이를 빌려 당시 격전의 主役(주역)들을 떠올렸던 것이다.

赤壁賦는 前後 두 편이 있는데 後赤壁賦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山高月小 水落石出’(산은 높고 달은 기울었으며 물이 빠지니 돌이 훤히 드러나는구나).

늦가을 어느 날 물 빠진 강의 모습을 보고 읊은 것을 후세 사람들은 黑幕에 가려있던 진상이 훤히 드러나는 것도 水落石出에 비유했다. 아무리 덮어두려고 해도 진상은 언젠가는 드러나게 된다는 뜻이다. 事必歸正(사필귀정)이라고나 할까. 어찌 以手遮天(이수차천·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림)할 수가 있겠는가.

鄭錫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478sw@mail.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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