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두 화랑서 동시 문봉선展/섬진강 5백리 '진경산수'

  • 입력 1999년 11월 28일 18시 11분


화폭속에서 우거진 대나무가 바람에 우수수 흔들린다. 들길을 따라 걷노라면 낮게 흐르는 강물 위 푸른 하늘에 흰 구름이 고요히 흘러간다.

저녁 어스름에 잠겨가는 마을의 고적함. 깊은 밤 숲길에 휘영청 밝은 보름달 뜨고 새벽에 다시 잠깨는 마을.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바람이 불더라도,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겨울이 와도 산은 말없이 누워있고 강물은 낮게 낮게 흘러간다.

산과 강은 세월의 흐름에 불평하지 않고 의연하다.

금강산 북한산 등을 답사하며 실제 풍경을 힘찬 붓질로 표현해온 작가 문봉선(38).

그가 4년동안 전북 진안군부터 남해안까지 섬진강 물길 200여㎞를 답사하며 주변 풍경을 그렸다.

12월1일부터 24일까지 서울 종로구 소격동 ‘아트스페이스 서울’과 종로구 관훈동 학고재에서 동시에 열리는 ‘섬진강,붓길따라 오백리’전.

사실성을 바탕으로 하되 과감한 생략을 통해 추상화를 연상시키는 작품(‘죽림’)과 사실적인 산과 들의 모습을 담은 그림(‘남녘’) 등을 통해 섬진강 유역의 사계(四季), 아침 저녁과 밤 풍경을 담았다.

조선시대 화가 겸재 정선이 ‘관념산수’가 아닌 ‘진경산수’를 발전시킨 것처럼 그는 한국의 산수를 발로 누비며 ‘현대 진경’의 의미를 찾고 있다. 이같은 그의 활동은 현장을 중시하는 사실성과 국토에 대한 애정을 느끼게 한다.

이번 작품은 그가 과거에 주로 그렸던 산이 아니라 물길을 그렸다는 점에서 소재의 변화가 일단 눈에 띈다.

“높은 산만 그리다보니 높은 곳만 쳐다본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인생을 폭넓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앉으나 서나 발밑을 낮게 흐르는 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인생이란 높은 곳에 있는 적도 있지만 낮은 곳에 머무는 때도 있으니까요.”

섬진강 유역전체를 그린 22m길이의 대작 ‘섬진강 전도―강산무진(江山無盡)’도 선보인다.

들판의 풍경을 서정적으로 그렸으면서도 굳건한 필체로 허약하지 않은 느낌을 전해준다.

아트스페이스 서울 02―720―1524, 학고재 02―739―4937

〈이원홍기자〉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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