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김학준/베일벗는 한국戰 비밀들

  • 입력 1999년 11월 21일 18시 36분


동아일보가 최근 단독입수한 중국공산당측의 6·25남침전쟁 관련자료들은 다음의 몇 가지 사실들을 보여준다. 첫째, 6·25남침전쟁은 김일성(金日成)을 중심으로 한 북한 정치지도층의 끈질긴 대소(對蘇) 대중(對中)설득과 호소에 움직인 스탈린과 마오쩌둥(毛澤東)의 지원의 결과로 일어났다. 이것은 뒤집어 말해 북한의 지도층이 남침을 계획하지 않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전쟁이었음을 뜻한다.

둘째, 스탈린은 북한의 남침으로 말미암아 미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하게 되고 그것이 3차대전으로 확전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따라서 50년 1월의 애치슨선언, 즉 남한을 미국의 동북아 방위선에서 제외시킨 애치슨 국무장관의 기자회견을 보고서야 비로소 미국의 군사개입이 없으리라는 판단아래 동의했다. 그렇기에 막상 미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해 들어오자 무척 당황했고, 소련이 사전에 북한을 도와주었다는 증거가 남지 않도록 철저히 은폐하라고 거듭 지시했다. 그뿐 아니었다. 미국과의 직접적 군사대결을 피하려면 최악의 경우 북한의 붕괴도 감내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셋째, 미국 역시 소련과의 직접적 대결로 확대되는 것을 경계했다. 그래서 소련공군이 대규모로 참전한 것을 알고도 끝내 비밀에 부쳤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만저우(滿洲)로의 확전을 제의한 당시 유엔군 총사령관 맥아더의 해임은 미국 정부로서는 불가피했을 것이다.

넷째, 스탈린은 미국의 군사개입이 없으리라고 잘못 판단했음에 비해 마오는 미국의 군사개입을 경계하라고 북한 지도층에 미리 경고했다. 그뿐 아니다. 마오는 미군이 개입하는 것을 보자마자 미군이 인천에서 기습적으로 상륙작전을 시도할 것임을 북한 지도층에 예언했다. 이 사실들을 밝힘으로써, 중국측 자료는 마오가 군사전략가로서 스탈린보다 한 수 위였음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다.

다섯째, 중국측 자료는 중공군의 참전과 관련해서도 소련측이 이미 공개한 자료와 대조되는 정보를 보여준다. 유엔군의 반격에 따라 북한이 붕괴의 위기에 처하자 소련은 미국과의 직접적 대결을 피하기 위해 북한의 붕괴를 불가피한 일로 받아들이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지만 마오는 “차마 그렇게 할 수는 없다”면서 출병을 결정했다고 중국측 자료는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소련이 중국에 대해 대규모 군사 경제 원조를 약속하자 중국이 비로소 파병을 결정했다는 소련측 자료와 달라, 앞으로 보다 더 깊은 연구를 요구한다.

여섯째, 스탈린의 치밀함이라고 할까, 교활함이라고 할까가 그대로 드러난다. 소련이 개입한 흔적을 조금이라도 남기지 않으려고 매우 꼼꼼하게 지시했는가 하면, 북한군이 계속 후퇴하게 되자 한편으로는 중국에 파병을 요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을 상대로 재빨리 평화회담을 제의하는 더블 플레이를 벌인 것이 그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중국측이 최근 1∼2년 사이에 새로운 자료들을 비공식적으로 공개하고 있음은 바람직한 일이나, 아직도 충분할 정도로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내년은 6·25남침전쟁 발발 50주년의 해이다. 마치 노근리 양민학살에 관한 미국측 자료들이 공개됐듯 그들의 자료가 더 많이 공개되어 우리가 진상에 더 깊이 접근하게 되기 바란다.

김학준 <인천대총장 본사 편집논설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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