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배인준/상업주의

  • 입력 1999년 10월 26일 20시 02분


탤런트 서갑숙씨의 성체험 고백서를 ‘상업주의’의 산물로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상업주의라는 말 속에는 이에 부정적인 가치판단, 이를 비판하고 싶은 생각이 깔려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상업주의에 대한 긍정적 해석과 수용은 불가능하거나 해서는 안되는 것일까.

▽상업주의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운 사람이나 영역이 현실 속에 얼마나 존재하는지 의문이다. 경제 각 분야는 말할 것도 없고 정치 행정 언론 종교 문화 예술 스포츠분야도, 공익성을 앞세우는 분야들도 궁극적으로는 자신들의 가치를 키워서 팔려고 한다. 외교도 국가적 상업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역사유적과 성지(聖地)도 관광상업주의에 이용된다. 현실이 그렇기 때문에 상업주의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보다는 인간의 본성에 깔려 있는 상업주의가 개인 사회 국가의 발전에 중요한 동인(動因)이 된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또 진정한 상업주의는 이기(利己)의 차원을 넘어서서 공동선(共同善)에도 접목된다. 정치인은 유권자들의 표(票)를 좇아 정치활동을 하지만 기본적으로 다수 국민의 이익을 외면하고는 존립할 수없다. 언론 역시 독자나 시청자가 요구하는 역할을 제대로 못하면 상업적으로도 성공할 수 없다. 어떤 책도 선정성 충격성 등으로 일시적 화제를 모으고 베스트셀러가 되더라도 메시지에 생명력이 없으면 그 저자와 출판사는 오래 사랑받지 못하고 도태된다.

▽기업이나 금융기관의 상업주의도 다르지 않다. 눈앞의 사익(私益)만을 위해 반사회적 행위를 일삼는 기업이라면 소비자가 등을 돌린다. 공신력과 도덕성이 무너지면 상업주의도 붕괴할 수밖에 없다. 결국 상업주의는 보편적 가치와 윤리, 질서와 규율, 공동체의식 및 공익성 등과 접점을 찾을 때만 성공할 수 있다. 건전한 상업주의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상업주의가 갖는 양면성이다.

배인준<논설위원〉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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