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천년특집]‘나만의 공간’서 사색 만끽

  • 입력 1999년 10월 26일 18시 44분


르네상스시대의 선물인 ‘개인적인 공간’이 없었다면 자아를 꽃피우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자기 성찰과 상상력이 싹을 틔우는 것은 오로지 고독 속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르네상스시대에 개인적인 공간과 고독은 귀족들의 특권이었다. 그리고 세월이 조금 흐른 다음에는 신사들의 특권이 되었다.

▼내면의 세계 문 활짝▼

개인의 방은 그 사람의 동굴이며, 피난처이고, 휴식처이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모든 것이 활기차게 움직이는 삶의 한 가운데에서 언제나 동굴이 주는 휴식과 위안을 그리워했다. 동굴 같은 개인의 휴식처에서 사람들의 내면에 존재하는 은밀한 공간이 활짝 열리고, 영혼은 떠들썩한 인간사회로부터 구원을 받는다.

나는 어렸을 때 어머니와 한 방에서 잠을 잤다. 오빠는 다른 방에서 아버지와 함께 잤다. 잠자리에 누우면 어머니의 숨쉬는 소리, 한숨 소리, 울음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그것은 내게 외부로부터의 침략과 같았다. 잠을 자다가 눈을 떠보면 어머니는 언제나 내 옆에 있었다. 잠자는 내 얼굴을 맹렬한 시선으로 내려다보는 어머니의 얼굴과 마주칠 때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꿈도 가려서 꾸어야 했다. 이것은 내가 자신의 무의식에 전혀 접근할 수 없었음을 뜻한다.

어른이 된 후에 나는 여호와의 증인 본부에서 400명이나 되는 사람들과 함께 3년간 산 적이 있었다. 두 사람이 방 하나를 같이 쓰는 시스템이었는데, 나는 누군가가 항상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몸짓 하나 하나도 조심했다. 그것은 내게 고문과 같았다.

▼고독속 자아 꽃피워▼

나중에 인도의 히데라바드에서 살 때, 나는 맹렬한 열기가 이글거리는 오후가 되면 어둠침침한 침실에 틀어박혔다. 달콤한 산들바람이 나의 벌거벗은 몸을 간지럽히고 희미한 꽃향기가 내 몸을 씻어 내렸다. 빛이 잘 들어오지 않도록 블라인드를 내린 방안에서 마음 내키는 대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하얀 벽에 비치는 빛과 그림자를 바라보던 기억이 난다.

지금 나는 상자들 사이에서 살고 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았던 모든 집과 방의 기억을 지닌 내 물건들이 모두 그 상자들 속에 들어 있다. 이제 곧 내 딸이 사는 집 근처의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면, 그때 나는 이 상자들을 열 것이다. 내 물건들은 내 자아의 화신이다. 내게는 나의 물건들과 나의 자아를 보듬어줄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새로운 아파트의 새로운 고독 속에서 나의 자아가 무엇을 싹틔우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http://www.nytimes.com/library/magazine/millennium/m5/room―harrison.html)

▽필자〓바버라 해리슨(작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