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제전망도 '지침'따라 각색?

  • 입력 1999년 10월 21일 19시 10분


대표적 정부산하 경제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내년도 경제예측 발표를 앞두고 정부 일각의 간섭이 있었다는 얘기가 들린다. 일부 보도와 KDI 관계자에 따르면 내년도 실업률은 5% 이내로, 1인당 국민소득은 1만달러 이상으로 발표해 달라는 등의 주문이 있었다는 것이다. ‘5% 이내의 실업률’에 대해 KDI 안에선 “다른 거시지표 변수를 조절하지 않는 한 그런 전망이 나오지 않는다”는 소리도 흘러나왔다. 사실상 정부의 영향을 받고 있는 또다른 연구기관의 경우도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를 넘을 것이라는 자체 예측결과를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경제연구기관은 경제의 현실을 진단하고 장래를 예측하면서 정부를 비롯한 경제주체들에 유효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같은 역할을 위해서는 두뇌집단으로서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독립성 독자성을 최대한 견지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돈줄을 쥔 측이나 권력의 입김에 휘둘려 특정한 목적을 뒷받침이나 하는 기관으로 전락할 경우 국민적 차원에선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클 수밖에 없다. 말이 정부산하기관이지 사실은 납세자위임기관인 국책연구기관일수록 더욱 그렇다. 이들 기관은 정부에 예속되지않는 중립적 활동을 통해 정부의 실패를 예방하는 역할을 국민으로부터 부여받고 있다. 따라서 정부부터 이들 기관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

KDI는 내년 경제전망에 대한 정부측 개입설을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그런데 21일의 KDI 발표에선 석연치않게 실업률 전망이 빠졌다. 이에 대해 KDI측은 “올해는 예외적으로 전망치를 발표했지만 실업률이 하향추세이고 내년에도 큰 변동이 없을 것 같아 내년 전망치는 발표하지 않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실업문제는 매우 중요한 정책대응과제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약하다. 아무리 경제가 회복되더라도 구조적 실업이 상당히 많을 것으로 분석했다면 그 예상치를 내놓고 대응방안을 제시하는 게 옳다.

경제예측이 꼭 맞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합리적인 분석모델을 통해 전망작업을 했다면 이를 가감없이 밝히고 그 조건들을 검증해 여러 경제주체들이 참고토록 할 필요가 있다. 예측의 정확성을 따지기 전에 우리가 지금 문제시하는 것은 정치논리 등에 영향받아 거짓 전망을 내놓거나 ‘예측 자체의 진실’을 숨기는 행태다. 바로 이런 것이 정책방향과 경제주체들의 경제행위를 오도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정치적 계산 아래 장밋빛 경제전망을 남발하거나 발표토록 하여 경제를 병들게 한 지난날의 잘못을 되풀이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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