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밀레니엄]日경제 변신실패 ‘10년 제자리 걸음’

  • 입력 1999년 10월 13일 19시 34분


85년은 일본에게 잊지못할 한 해였다.

일본은 45년 패전 뒤 40년 만에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채권국으로 부상했고 미국은 세계최대의 채무국으로 전락한 역사적인 해였다. 변화된 위상을 반영하듯 엔(円)은 달러보다 비싸졌다.

일본인들은 미국의 부동산과 영화사를 냉장고 사듯 사들였다.

미국기업은 “일본을 배우자”며 앞다투어 소니와 도요타의 공장을 시찰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일본 경제는 80년대말부터 거품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10년간 정체상태를 보이고 있다. 90년부터 10년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표현할 정도.

▼‘성공의 함정’빠져▼

일본신화는 왜 이처럼 순식간에 파산했을까. 일본인 스스로 찾아낸 해답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바로 일본경제의 성공 요인과 일치한다.

결국 일본이 ‘성공의 함정’에 빠졌다는 분석. 90년대 들어 ‘디지털경제’와 ‘글로벌마켓’으로 상징되듯 경제 패러다임이 변했는데 일본은 과거의 성공경험에 빠져 변신에 실패했다는 것.

경제평론가인 사이토 세이치로(齊藤精一朗)는 이를 “대장성이 지휘하고 기업과 금융이 따라가는 체제가 전후 40년간은 효율적으로 작동해 왔지만 90년대 들어 디지털 경제로 경제구조가 바뀌면서 기업의 순발력과 창의성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는데 일본의 기업과 금융회사는 관료의 지도만을 습관적으로 기다리다가 시대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종신고용, 연공서열로 표현되는 일본 특유의 보험원리가 적용되던 사회 전체시스템도 글로벌 마켓에서는 약점이 노출된다.

▼디지털기술 뒤떨어져▼

일본의 전체 시스템은 유능한 A가 평범한 B와 능력이 떨어지는 C를 함께 데리고 가는 시스템.

이런 체제는 효율과 역동성을 희생하는 대신 조직원 모두를 강한 일체감으로 묶을 수 있다.

리더가 잘 이끌면 효율성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조직은 ‘게임의 법칙’이 확립된 환경에서는 장점이 많지만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서는 약점이 많다.

결국 90년대들어 디지털기술로 시장의 승자를 결정하는 게임의 법칙이 바뀌면서 역동성이 뛰어난 미국기업에 일본기업이 밀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은 사실 일본을 모방해온 한국에게도 시사점이 많다.

그러나 일본은 곧 다시 자신의 시대가 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미 세계최고의 상품제조기술을 가지고 있고 디지털 경제가 성숙돼 게임의 법칙이 확립되면 안정된 환경에서는 효율성이 가장 뛰어난 일본기업이 다시 세계를 제패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병기기자〉watch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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