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밀레니엄/워크맨 신화]비행기안서 탄생한 ‘日本 상징’

  • 입력 1999년 10월 13일 18시 50분


‘제국주의에서 패전국으로 다시 세계 경제대국으로.’

일본이 20세기 100년간 걸어온 길은 이같은 한 문장으로 압축할 수 있다. 패전후 페허가 된 상태에서 일본이 경제대국으로 우뚝선 기적을 이루어낸 배경에는 기초기술을 선진국에서 수입, 이를 ‘소형화 융합화 복합화’한 상용제품을 만들어낸 노하우에 있다.

그 대표적인 제품으로 꼽히는 것이 ‘워크맨’이다. 워크맨을 만드는데 필요한 기초기술은 일본이 개발하지 않았다. 워크맨은 미국 벨 연구소가 세계 최초로 만들어낸 녹음 기술과 네덜란드 필립스사가 가지고 있던 콤팩트 카세트 제조기술을 결합한 것이다. 그러나 이 기술을 응용, 녹음기를 주머니에 들어갈 정도로 소형화하고 기존에 소리를 녹음하는데 사용하던 녹음기를 단순히 음악 등 소리를 재생해 듣는 제품 즉, ‘헤드폰 스테레오’라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낸 것은 일본인이었다.

소니 워크맨사업팀 마케팅담당자 야마기시(山岸)가 밝히는 워크맨 개발과정은 이렇다.

78년 가을. 소니의 공동 창업자이자 음악애호가인 이부카 마사루(井深大)는 미국으로 출장을 가기전 부하직원을 불렀다.

“비행기에서 음악만을 들을 수 있도록 소형녹음기를 만들어보게.”

해외출장을 자주 다니던 그는 비행기안에서 음악을 듣기위해 휴대용 녹음기와 헤드폰을 가지고 다녔지만 너무 무거워서 불편했다.

녹음기 사업팀은 녹음기능을 삭제하고 재생기능만 있는 ‘이부카의 주문품’을 만들어 냈다.

시험제작된 기계로 음악을 들어본 이부카는 기분이 좋았다. 공동회장인 모리타 아키오(盛田昭夫)에게 “이거 한번 들어보게. 걸어다니며 들을 수 있는 스테레오 카세트플레이어가 있으면 좋겠는데…”라며 건네줬다. 그때까지도 이부카는 이를 상용화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러나 워크맨으로 음악을 듣는 순간 모리타의 비즈니스 감각이 요동쳤다.

79년2월. 모리타는 소니의 젊은 사원들을 소집해 “녹음기능이 필요없고 헤드폰이 부착된 재생전용기를 상품화하라”고 지시했다. 여름방학전인 6월까지 워크맨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직원들은 깜짝 놀랐다. 녹음기는 소리를 녹음하는 것이 주기능이라고 생각했지 단순히 소리를 재생하는 기능만으로 상품이 된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것. 모리타의 이 판단을 뒷날 미국의 포천지가 ‘역사상 가장 뛰어난 경영결단’ 중 하나로 평가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들은 몰랐다.

당시 소형 녹음기의 주요 소비자는 취재원의 말을 녹음하는 기자들이었다. 상품이름도 ‘프레스맨(PRESS MAN)’. 직원들은 제품개발에 회의적이었지만 모리타의 의지가 너무 강해 드러내놓고 반대하지 못했다.

6월말 소니사는 제품판매에 앞서 기자들을 불러 제품발표회를 했다. 그러나 기자들은 ‘녹음도 안되고 혼자서 음악을 듣는 이상한 제품’에 냉랭한 반응만을 보였다. 불안한 마음을 졸이며 7월 여름방학에 들어서면서 제품을 발매했지만 시장에서는 별 반응이 없었다.

한달 정도 지나자 젊은이들에게서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젊은이들이 많이 모여드는 전자제품 거리 아키하바라(秋葉原)가게들에서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하더니 8월부터 주문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여름방학을 발매기간으로 잡은 것이 주효한 것이었다

6개월뒤 소니측은 해외판매에 나섰다. 워크맨은 금세 전세계적인 히트상품으로 떠올랐다. 다른 가전회사들도 허겁지겁 워크맨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기 시작했다. 이후 워크맨은 98년까지 1억6000여만대가 팔리는 대히트 상품이 됐으며 ‘헤드폰 스테레오 재생기’라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했다. 30여개국에서 만들어 내고 300여종에 달하는 헤드폰 스테레오는 전세계적으로 매년 4000만대(소니 워크맨은 250만대)가 팔려나가고 있다.

‘워크맨’은 영국의 대표적인 사전 ‘옥스퍼드 잉글리시’사전에도 실리게 됐고 전세계인에게 ‘전자제품은 일본’이라는 강한 인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

야마기시 차장은 “‘비행기에서 혼자서 음악을 듣고싶다’는 이부카의 영감이 소니사에 막대한 부를 가져다주었다”고 말했다.

〈도쿄〓이병기기자〉watch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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