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밀레니엄/미디어정치 개막]한국TV토론 불공정시비

  • 입력 1999년 10월 6일 19시 47분


고 박정희 전대통령이 97년 TV 대선합동토론회에 나왔으면 어땠을까. 굳은 표정과 권위적인 말투 때문에 좋은 점수를 얻지 못했으리라는 것이 언론전문가들의 평이다.

한국의 TV방송은 61년 KBS TV 개국 이래 38년의 역사를 지녔으나 미디어선거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97년이라고 할 수 있다. 사상 처음으로 TV 대선합동토론회가 열렸고 선거광고방송과 TV연설이 활성화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TV 선거 연설은 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 때 박정희후보와 김대중후보의 연설이었다. 그러나 이후 대통령선거가 간접선거가 되면서 중단되었다가 87년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되면서 TV연설과 토론도 부활되었다. 87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관훈클럽이 4당 후보들을 대상으로 개별 토론회를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TV연설의 경우 여당 후보 연설은 일요일 저녁 황금시간대에 방송됐고 전날부터 방송 사실을 여러번 알렸으나 야당 후보는 토요일 오후3시, 그것도 4시간 전에야 방송 사실을 알려 편파 시비가 일었다. 선거보도와 관련해서도 불공정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여당의 유세장면은 70초, 야당은 10초 식으로 보도 시간도 달랐고 여당 후보는 확신에 찬 모습을 화면 가득 클로즈업하는 일이 많았다. 반면 야당 후보는 청중도 없는 유세장에서 여당을 공격하는 장면을 비추는 일이 많았다. 김대중후보의 경우 “TV토론회를 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며 종종 불만을 토로해왔다.

그러나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97년 TV합동토론회에서는 이인제후보가 이미지 상승폭이 가장 컸고 그 다음이 이회창 김대중 순이어서 상대적으로 무명인 후보일수록 TV토론회의 덕을 많이 보는 것으로 분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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