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규동/기업은 실직자를 돌아보라

  • 입력 1999년 10월 6일 18시 43분


고용시장의 여건이 나빠지면서 그동안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했던 많은 근로자들이 직장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이제 실업 문제는 더 이상 당사자와 그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장 심각한 국가적 과제로 등장했다.

금년 2월에는 실업률 8.6%, 실업자수 178만명으로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최악의 상황에 이르렀다. 경기가 빠른 속도로 호전되면서 실업률이 다소 낮아지고 있으나 고용 구조는 오히려 열악해지고 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년 이상의 전직(前職) 실업자의 비율이 지난해 8월 7.8%에서 금년 8월에는 15.6%로 두배나 급증하였다. 또한 전체 근로자중 임시 및 일용근로자의 비중이 3월부터 계속 50% 정도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외형적으로는 실업률이 감소하고 고용 여건이 호전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고용의 질적 수준은 더욱 악화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실정이다.

물론 IMF 사태이후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구조조정을 통한 경쟁력 강화를 모색하고 있다. 다만 이로 인해 직장을 떠나는 퇴직자들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데는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하거나 인색한 것같다.

정부는 그 동안 실업자를 위하여 실업급여 및 직업훈련을 제공하고 실직자를 고용하는 기업에 채용 장려금을 지급하는 등 여러가지 구제책을 실행하고 있으나 실효를 별로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실직자 문제를 정부에만 미루고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라고 주문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가 아닌가 싶다. 미국 포천지가 선정한 100대 기업중 83%의 기업은 인원 감축이 불가피한 상황에 처하면 감원 대상 직원들이 다음 진로를 개척할 수 있도록 전문적인 배려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퇴직자에 대한 관리, 즉 아웃플레이스먼트 개념을 인사 정책의 중요한 요소로 간주하고 퇴직자의 진로 개척 지원을 제도화하여 실행하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IMF 사태 이후 기업 생존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구조조정 기법인 조기퇴직 프로그램(ERP), 정리해고 등의 제도를 과감히 시행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기법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퇴직자를 위한 제도에는 눈을 돌리지 않는다. 퇴직금 지급만으로 할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하고 일단 퇴직을 한 사람은 회사와 더 이상 상관이 없다는 태도로 방관하는 기업들이 많은 것이다.

선진 기업들이 회사를 떠날 직원에게 추가적인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아웃플레이스먼트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업의 도의적인 측면 또는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기본 명제가 이 제도를 실행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두번째 이유는 보다 실용적인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최근 신문에는 일부 기업에서 직원들이 근무의욕을 잃고 근무시간에 사이버 주식거래에 열심인 풍속도를 전해준다. 하루아침에 목이 잘린 직장 선배의 모습은 현재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미래의 자화상으로 인식될 수 있다. 잔류직원의 사기는 생산성과 직결된다. 선진기업들은 수많은 구조조정 경험을 통해 퇴직자가 성공적으로 진로를 개척하도록 배려해주는 것이 구조조정 후 잔류 직원의 사기 및 생산성 저하 방지에 이바지하는 바가 크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인식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우리나라 기업이 앞만 보고 달리느라 주변을 돌아볼 상황이 없었다면 이제부터는 이 만큼의 경제적 성과를 이루는데 공헌한 주역인 근로자를 위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완수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성장이라는 일관된 목표에 밀려 고통을 감수하고 인내한 근로자를 위해 이제는 기업이 나서서 아웃플레이스먼트와 같은 제도적 ‘안전 장치’를 마련한다면 실업문제 해소에 기여함은 물론 실용적으로는 구조조정 이후 조직의 생산성 저하 방지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들의 이같은 노력은 기업의 능률을 높이고 실업 문제를 경감해 사회에 공헌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본다. 실업 문제에 임하는 자세는 해당 기업의 이미지와도 직결된다.

김규동(DBM 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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