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강영희/「정신의 고향집」은 평온한가

  • 입력 1999년 10월 1일 19시 13분


모두들 고향으로 떠나는 명절이 되면 어쩐지 제자리를 맴도는 허전한 기분이 되곤 한다. 아버지 시아버지 모두 실향민인데다 엄마마저 서울 토박이인 까닭에 ‘찾아갈’ 고향이 달리 없기 때문이다. 대신 가족모임의 왁자지껄함이 잦아든 저녁 무렵이면 교보빌딩 뒤편 빈대떡을 파는 열차집이나 낙지를 파는 실비집을 넘겨다보며 텅빈 서울거리를 어슬렁거린다. 지금은 빌딩숲이 들어선 서린동, 어린 시절의 ‘골목길’을 향한 그리움이랄까. 아버지만이 아니라 나 역시 실향민 축에 든다 할 수 있다.

찾아갈 고향이 있는 사람이라고 안심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지난 세기 우리의 모습이, 자신에 대한 주체적 시선을 비틀도록 강요당한데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을 정도의 빠른 변화에 등떠밀린 형국이었으니 이제 ‘고향’이란 허물만 남았다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마치 내 어린 시절의 그곳, 굴비두름이 걸린 대청마루와, 분꽃 봉숭아꽃 나팔꽃이 핀 뜨락이 재개발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처럼 말이다.

고향에 대한 향수란 결국 물밑 의식의 풍요로움에 대한 갈망이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의 근원이다. 그렇다면 물리적인 고향을 우리의 일상 속에서 최대한 보존하려는 안간힘과 함께, 영원히 존재할 수만은 없는 물리적인 고향 대신 쉽사리 부서지지 않을 정신적인 고향집을 마음 속에 깃들이게 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문화(文化)의 바람직한 역할 가운데 하나다.

식민지, 전쟁, 급속한 산업화로 이어진 지난날 우리는 일종의 난민의식에 기대어 삶을 이어왔다. 자신에 대한 주체적 시선은 비틀리고 어느새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한 우리의 난민의식이란, 과거의 황금시대에 대한 믿음은 부재한 대신 미래의 ‘그날’을 향한 불확실한 깃발만을 과도하게 흔들어대는 것이었다. 그러나 과거라는 주춧돌 위에 서지 않은 미래가 모래 위에 지은 조립식 건물일 가능성은 적지 않다.

난민의식을 규정짓는 것은 철저한 현실주의라는 동전의 앞면과 근원을 알 수 없는 허기라는 동전의 뒷면이다. ‘먹는 것이 남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옆에서 다른 하나가 죽어나가건 말건’ 게걸스럽게 먹어치운다. 그러나 결국 먹어도 먹어도, 아니 먹을수록 더욱더, 아마도 ‘정신적인’ 근원을 지녔을 허기는 심해지기만 한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시대가 우리에게 끼친 최대의 재앙은 어쩌면 얼마전부터 우리가 아주 조금씩 되찾기 시작한, 생존이 아니라 생활에 근거한, 각자 돌아서서 허기를 되씹는 대신 따로 또 같이 여백의 공감을 나누는 문화를 다시 낯설게 만든 것이다. 난세에는 난민의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요긴하다고 말할 사람도, 이제는 난민의식에서 벗어나야 할 시간이 되었다는 생각을 내심 하고 있을 것이다. 난민의식의 현실적인 모습인 이기적인 포식주의에서 좀 벗어나, 이를테면 주변에 못먹는 사람은 없는지 둘러보는 마음으로 옮아갈 때가 되지 않았을까.

또한 지난 역사에 대한 성찰 대신 미래의 그날을 향한 정체 모를 깃발을 강박적으로 펄럭여온 우리 특유의 난민의식 속에 자리잡은 기억상실형의 실향민의식, 또는 우리 역사에 대한 방관자의식을 가지고는 우리 앞의 장애물을 넘어설 수 없으리라는 사실도 자각해야 한다. 올 추석이 지난해보다 많이 흥청거렸다는 사실, 혹시 그 속에 이같은 난민의식의 편린은 없었는지 돌아볼 일이다.

강영희〈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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